[자연과학]‘초록생명’ 예찬…‘초록 덮개’ - ‘식물 사냥꾼’

  • 입력 2005년 1월 7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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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덮개/마이클 조던 지음 이한음 옮김/363쪽·2만2000원·지호

◇식물 사냥꾼/케여 힐셔·레나테 휘킹 지음/김숙희 옮김/327쪽·2만3000원·이룸

자칭 ‘만물의 영장’인 우리에게 그들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분을 저장해 이 별의 기후를 안정시켜 왔다. 그들의 씨앗과 열매, 잎은 그들을 먹고 자란 동물들과 함께 우리의 식탁을 채워준다. 초록빛으로 뒤덮인 대지와 풀, 꽃의 향기는 우리에게 안식과 위안과 영감을 준다. 반면 우리는 그들을 베고 태우는 데 지난 세기의 대부분을 보내지 않았던가.

이 두 권의 책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지상으로 진출했고 우리의 풍요를 뒷받침해준 육상 식물에 대한 찬가(讚歌)다. ‘초록 덮개’의 저자 조던은 동서양의 신화와 상징과 예술에 등장하는 나무와 꽃을 통해, ‘식물 사냥꾼’의 두 저자는 이국의 신비로운 식물군을 찾는 데 생명을 걸었던 17세기 이후 독일인들의 발자취를 통해 각각 ‘지구의 허파’를 이루는 초록 생명을 찬미한다.

나무는 유사 이래 세계 곳곳에서 신의 메시지를 지상에 중개하는 존재로 받들어졌다. 마야 문명권에서 세상의 중심에 서있는 존재로 숭배된 세이바나무. 사진 제공 지호

‘식물 사냥꾼’에 소개된 8명의 열광적인 화훼 수집가 중에는 유독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물이 많다. 근대 지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알렉산더 훔볼트. 1799년 범선을 타고 남미로 향한 그는 열대의 모기 때문에 밤마다 모래에 몸을 파묻고 잠을 청해야 했다. “존경하는 베를린 식물원장님, 살아 돌아갈지는 불확실하며 거의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료 봉플랑의 수고 덕분에 남미의 이국적인 장미와 달리아가 전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다.

동화 ‘페터 슐레밀의 이상한 이야기’로 독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낭만주의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도 ‘식물 사냥꾼’의 한 장을 장식한다. 러시아 로만초프 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한 그의 역정은 오세아니아와 인도양을 제외한 4대양 5대주에 이르렀다. 필리핀에서 샤미소를 경호했던 경비대장에게는 다음과 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초목, 돌, 벌레 등 무엇이든 다 보려는 이 신사를 위해 낮에만 말을 타도록 하고, 요구가 있으면 즉시 행렬을 세울 것.” 훗날 150개 이상의 식물 종(種)이 이 ‘낭만주의 문학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식물 사냥꾼’이 인물과 에피소드 위주로 엮여진 데 비해 ‘초록 덮개’는 ‘식물로 보는 인류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문명권을 오가며 식물과 관련된 원형의식을 탐구한다. 한 예로 저자는 ‘비는 신(神)의 정액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인에게 의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지만 여러 원시 문명권에서 공통된 관념이었다. 봄비가 온 뒤에는 어김없이 새순이 움트니 모든 식물의 ‘신랑’은 비를 내리는 신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인류에게 나무는 때로 신의 자격에 합당한 외경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질투하는 신’이었던 야훼의 제단 근처 숲을 모두 베어야 했다. 인간을 닮은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보편화된 뒤에도 문화권마다 외경심을 일으키는 나무들이 남아 있었다. 중화 문화권에서는 도교에서 서왕모(西王母)가 키운다는 복숭아나무가 환대를 받았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경외심을 일으키는 나무는 전나무였다. 성자 보니파키우스가 이교도의 성지에서 신성시되는 참나무를 베자 그곳에 전나무가 자라났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에도 성탄 시즌마다 유럽에서만 2000만 파운드(약 400억 원)어치의 전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된다.

“옛날 인류는 정령이 깃든 식물들을 학대하면 천벌이 내린다고 믿었다.” 저자 조던은 말한다. “영국에서만 지난 150년 동안 적어도 21종의 토착식물이 사라졌다. 사하라 사막이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이 지역에서 수백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는 단지 인류 전체의 미래에 대한 전조(前兆)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의 어리석음이 어떤 결과를 빚어냈는지 명확해지면서, 우리는 식물들에 점점 더 많은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부여해야 한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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