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코미디 정치’ 코미디로 비튼다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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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전회의’. 사진 제공 KBS
어전회의’. 사진 제공 KBS
‘17대 어전회의’.

KBS2 TV 오락 프로그램인 ‘코미디 파일’의 주요 코너로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정치 풍자극이다.

‘17대 어전회의’의 특징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논픽션’에 가깝다는 점.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과장되긴 했어도 누구나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해찬 총리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열린파’와 ‘나라파’ 대감들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다. 시대배경만 조선으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청자들은 “풍자는 없고 실제 상황을 그대로 베끼는 수준”이라고 혹평한다. 그러나 연출자 김영식 PD는 이렇게 반문한다.

“정치현실이 워낙 코미디 같은데 굳이 가공할 필요가 있겠는가.”

● 막말하는 대통령

‘… 어전회의’의 무대는 ‘옥종’(정종철 분)이 주재하는 어전. 임금의 이름은 정종철의 별명 ‘옥동자’에서 따왔다.

‘옥종’은 수시로 막말을 내뱉는다.

“뺨 때린 것 가지고 뭘 시끄럽게 굴어? 깽값 물어주면 되는 일 가지고.”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 내가 선빵 날린다.”

“나라파 개쪽 당하는 수가 있어.”

옥종이 막말하면 옆에 있던 사관(史官)은 더욱 부풀려 적는다. 언론의 보도를 꼬집는 대목이다.

옥종이 밀양 여학생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피해자에게 폭언을 퍼부은 뉴스를 듣고는 “짭새 걔들 왜 그런 거야” 하면 사관은 ‘경제 위기도 모자라 치안도 위기’라고 확대 해석해 적는다.

● 코미디 같은 정치 현실 그대로

대감들은 어전에서 국정을 논하며 한바탕 코미디 판을 벌인다.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변칙 상정하려는 열린파 대감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라파 대감들이 의사봉을 빼앗자 열린파 대감들은 손바닥으로 문갑을 친다.

나라파 대감들은 의사봉이 아니기 때문에 무효라고 항의하고 열린파 대감은 다시 뿅망치로 문갑을 ‘뿅 뿅 뿅’ 두드린다.

이해찬 총리처럼 네모 형 안경을 쓴 영의정(박준형)의 성질은 불같다. 망언으로 어전을 뒤집어놓고도 다시 화를 낸다.

“성질 같아서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자꾸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사과했어요. 뚜껑 열리게 하지 좀 마세요.”

● 제작진의 걱정은 편파 논란

여야 정쟁을 소재로 한 ‘17대 어전회의’의 제작진은 편파 논란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국내 정치상황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어 패러디라고 해도 자칫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 사건을 빗댄) ‘간첩대감 폭로 발언’ 이후 여론이 나라파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열린파 대감의 발언과, “대선 결과에 승복하는 미국 케리 후보처럼 전하도 헌재의 행정수도 위헌 결정에 승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나라파 대감의 의견을 나란히 놓는 것도 그런 이유.

김 PD는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정치적 견해도 팽팽히 갈라져 있는 상황이어서 편파 시비가 가장 걱정 된다”며 “제작진의 의견이나 판단은 배제하고 여야 정치인들의 주장을 코미디적 표현으로 바꾸어 그대로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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