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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7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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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짝인 여자아이에게 걸핏하면 맞고 오기 때문. 그 짝은 아들에게 준비물을 빌려달라고 하고, 아들이 안 갖고 오면 때린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아이들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말아야 한다고 수시로 말했는데 이 때문에 아들이 맞고 있는지 걱정됩니다. 여자아이가 다시 못 덤비게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얘기해야 하는지….”
요즘 부모가 자녀에게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는 경향과 맞물려 초등학교에서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서울 전동초교 김유정 교사는 “교실에서 여아가 남아를 꼬집거나 때리는 경우가 반대 경우보다 6 대 4 또는 7 대 3 정도로 많다”며 “더러 여아에게 맞고 우는 남아도 있다”고 현재 학교의 실태를 소개했다.
남아가 여아를 때리는 경우 아이의 성격이나 가정에 문제가 많다면, 여아가 남아를 때리는 경우는 일상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맞는 남아들이 가정교육을 잘 받은 반듯한 아이가 많은 것도 특징.
전문가들은 최근에는 여아의 폭력이 심각화, 집단화하는 만큼 아들이 여아에게 맞는다는 하소연을 무시해서만은 안 된다고 말한다.
▽여아들의 폭력 증가=여아가 남아를 때리는 현상은 저학년에서도 일어나지만 고학년이 더 심하다.
여아가 남아보다 빨리 자라 덩치가 커지고, 고학년에서는 남녀 학생을 불문하고 성역할에서 ‘양성적(兩性的)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여아가 폭력을 행사하는 배경에는 전반적인 학교 폭력의 증가가 깔려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팀이 경기 부천, 안산시의 초중학생 19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학교 폭력 빈도가 1년 사이 20% 증가했고 나이가 어려졌으며 폭력 행태가 심각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여학생이 가하는 폭력이 지난해 8%에서 올해 13%로 증가했다.
김 교수는 “여아가 또래 친구들에게 폭력 또는 따돌림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여아의 폭력을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고 소개했다.
남녀의 성역할이 모호해지고 자녀들을 귀하게 키우는 분위기 등이 여아의 남아에 대한 폭력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가벼운 폭력이라면=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소아정신과 노경선 교수는 “남아가 여아에게 맞았다면 우선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선 아이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다.
저학년일수록 “너는 장난으로 하지만 나는 많이 아파” “네가 때리면 나도 너를 때릴 수 있다” 등 주장을 제대로 펴기만 해도 문제는 해결된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면 교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이가 고학년이라면 유머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좋다.
남아가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때리는 여아에게 “너는 나에 대한 사랑을 왜 그런 식으로 표현하니” “대게의 발이 나를 꼬집으려 한다” 등 유머로 대처하면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맞는 아이에게 여아가 남아를 때리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때리지 않는 ‘신사도’를 이용한 비겁한 짓임을 분명히 밝히라고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학교 가기가 싫을 정도라면=우선 아이에게 주위 친구가 못살게 괴롭히는 것은 당하는 아이가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임을 “나를 가만히 나둬”라고 단호하게 말하도록 시킨다.
아이에게 자신을 때리는 아이와 맞서 싸우라고 가르치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교사에게 알려야 한다. 교사는 짝을 바꾸거나, 때리는 아이에게 교육적인 ‘개입’을 할 수 있다.
맞은 아이의 부모가 때린 아이의 부모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이어지고 교사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학교에서 맞는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또래 친구를 정해줘 따돌림 및 폭력 예방에 성공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작은 폭력이나 따돌림이라도 발생하면, 모든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이들에게 폭력의 방관자는 곧 참관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방편이다.
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면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문의의 도움은 피해 어린이뿐 아니라 가해 어린이에게도 필요하다. 피해 어린이 중에 대화 기술, 사회성 등이 부족하고 남을 자극하는 스타일이 많다면, 가해 어린이 중에는 화를 조절하는 데 문제가 있는 아이가 많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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