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체홉의 ‘갈매기’…섬세한 배경음, 사랑의 비애 ‘실감’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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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가 연출한 체홉의 연극 ‘갈매기’.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가 연출한 체홉의 연극 ‘갈매기’.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서울 예술의전당은 2003년 ‘보이체크’에 이어 올해도 러시아 연출가를 초청하여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무대에 올렸다.

‘갈매기’는 작가 지망생인 트레플레프, 그의 어머니이자 유명한 여배우인 아르카지나, 그녀의 애인인 소설가 트리고린, 트레플레프의 사랑을 받지만 트리고린에게 마음을 빼앗긴 니나 등 10명의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엇갈린 사랑을 통해 인간의 삶과 운명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체호프 작품의 특징은 인물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와 이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입체감에 있다. 기존의 사실주의적 접근과는 달리 이번 무대는 상징적으로, 시청각적으로 이같은 특징을 잘 살려냈다.

우선 청각적인 면에서 무대 위에서 직접 물소리를 내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각 인물의 대사도 강약과 리듬감이 잘 살아나도록 처리됐다. 시각적인 면에서는 토월극장의 무대 전체를 활용해 인간의 사랑과 삶의 심원한 깊이를 나타냈다. 무대 안쪽으로 길게 이어진 나무다리, 부서진 나무배, 그 위에 걸린 사치스러운 샹들리에는 끝내 호수를 떠날 수 없는 등장인물의 한계, 샹들리에의 인공적 화려함 뒤에 감추어진 사랑과 삶의 공허를 상징한다.

‘갈매기’의 인물들에게 사랑은 곧 삶이다. 트레플레프가 니나에 대한 사랑 속에서 극작가로 성장하고, 니나가 트리고린에 대한 사랑과 함께 배우의 꿈을 키우는 것처럼, 이들은 사랑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사랑의 성공과 실패는 곧 삶의 완성이며 좌절이다.

공허하게 호수를 맴돌며 연명하던가 아니면 한 순간 섬뜩한 비명을 남기고 박제가 되는 갈매기들. 삼류배우로 살면서도 버림받은 사랑의 주변을 맴도는 니나, 니나가 떠난 뒤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결국 자살하는 트레플레프 모두 갈매기들이다.

서명수 연극평론가·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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