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모독’ 다시 나선 형제-형은 연출가·동생은 배우

  • 입력 2004년 2월 11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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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76’의 연출가 기국서씨(오른쪽)와 배우 기주봉씨 형제. 기국서씨는 “1977년 당시 극단 창단멤버였던 동생이 소극장에 한번 놀러오라고 해 당시 백수였던 나는 슬리퍼를 끌고 구경을 갔다. 그 인연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변영욱기자
‘극단 76’의 연출가 기국서씨(오른쪽)와 배우 기주봉씨 형제. 기국서씨는 “1977년 당시 극단 창단멤버였던 동생이 소극장에 한번 놀러오라고 해 당시 백수였던 나는 슬리퍼를 끌고 구경을 갔다. 그 인연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변영욱기자
“그러니까 ‘형제는 용감했다’고 쓰실 겁니까?”(기주봉)

“아무리 형제라도 둘이 얼마나 자주 싸우는데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워낙 자기주장이 강하니까요.”(기국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극단76’ 연습실을 찾아갔을 때 연출가 기국서(53), 배우 기주봉씨(50) 형제는 대뜸 이런 말부터 던졌다. 이 극단을 대표해 온 두 사람은 연극 ‘관객모독’의 연출자와 배우로 8년 만에 다시 한무대에서 만난다. 3월 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관객모독’에는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 등 초연 멤버들이 대부분 출연한다.

1978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시장통 골목에 자리 잡은 ‘76소극장’에서 초연된 ‘관객모독’은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공공장소에서 상스러운 욕설을 퍼붓고, 관객에게 물세례를 퍼붓는 등의 도발적 퍼포먼스는 유신(維新) 치하 암흑기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던 것.

“관객들이 90분 내내 숨죽이며 연극을 지켜봐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던 거죠. 특히 막판에 무대와 객석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욕설과 꽃, 물세례가 난무하는 ‘난장판’ 속에 관객들은 연극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런 충격보다 언어의 파격과 유희를 통한 코미디를 좀 더 세련되게 보여줄 생각이에요.”(기국서)

“당시 관객들은 배우가 객석에 대고 욕을 해대자 무척 불쾌한 반응을 보였어요. 항의의 뜻으로 무대에 술병이라도 던질까봐 입장할 때 관객들의 몸을 검색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물벼락을 맞고 울어버린 여학생이 나중에 연극인이 됐을 정도로 공연 자체의 파장은 컸습니다. 요즘 관객들이야 워낙 엽기적인 것에 익숙해 배우들이랑 같이 욕하고 물 뿌리며 즐기지 않을까요.”(기주봉)

초연 당시 기국서씨는 27세, 기주봉씨는 24세. 청춘의 객기와 낭만을 즐기던 두 사람은 이제 50줄에 들어섰다. 기국서씨가 20년 넘게 이끌었던 ‘극단76’은 ‘관객모독’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족’ 등 자유로운 실험정신과 저항의 미학을 갖춘 전위연극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관록의 연극배우 기주봉씨는 90년대 후반부터 영화 ‘조용한 가족’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공공의 적’ 등에서 조폭 두목이나 형사반장 역할로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관객모독’은 지난해 중앙리서치의 조사결과 ‘30, 40대가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최고의 연극’으로 뽑혔다. ‘극단76’ 출신인 ‘PMC프로덕션’ 대표 송승환씨는 서울 강남의 난타극장에서 고정 레퍼토리로 공연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

현재 극단 대표를 맡고 있는 동생 기주봉씨는 “‘관객모독’은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라며 “대표작을 고정 레퍼토리로 만들어 형이나 극단 식구들이 새로운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는 토대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02-762-0010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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