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KBS 난시청해소 뒷짐

입력 2003-12-25 18:43수정 2009-09-2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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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도 대형 건축물로 인한 난시청 지역이 적지 않다. 사진은 서울시내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이곳엔 지상파 TV 난시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수 주민들이 따로 수신료를 부담하면서 케이블TV나 위성방송을 보고 있다. -변영욱기자
“서울 도심이니까 설마 했는데 집에서 쓰는 안테나로는 소리만 겨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시내 서민들이 사는 다세대주택에 제대로 된 공청안테나가 많지 않다는 현실을 KBS가 알아야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사는 회사원 박성용(朴性龍·30)씨는 한 달 전 KBS를 보려고 매달 1만8000원의 수신료를 내는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했다.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했지만 공청안테나를 연결해도 KBS를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성남시 중원구 중동에 사는 브랜드 컨설턴트인 김동규(金東奎·31)씨는 “우리 동에는 단독주택이 많아 80% 이상의 가구가 유선방송을 통해 지상파를 시청하고 있다”며 “유선방송 수신료도 내고 매달 2500원의 KBS 수신료도 내는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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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난시청 가구는 하나도 없다?=KBS는 “현재 서울엔 난시청 가구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간벽지나 도서지역뿐 아니라 서울 경기 등 수도권도 ‘잠자리형 가정용 안테나’만을 통해 깨끗한 화질의 KBS를 보기란 쉽지 않다. 주택이 밀집된 곳에서 나타나는 전파 간섭 때문에 안테나를 높이 세워도 제대로 된 화면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KBS가 자체 집계하고 있는 난시청 가구 수(수신료 면제 대상)는 전국 1500만가구 중 5%인 75만가구. 그러나 2월 방송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는 26%가 난시청이라고 응답해 KBS 집계치의 5배가 넘었다.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권오을(權五乙) 의원은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해 “전국에 난시청 가구는 315만가구”라며 “KBS가 연간 945억원의 수신료를 부당하게 징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권 의원은 “KBS가 난시청 해소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난시청 지역 주민들이 유선방송과 위성방송 가입료만 매년 1328억원을 부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4월 전국농민단체협의회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서울 및 6대 광역시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1.1%가 유선방송을 통해 TV를 보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유선방송 시청자 중 73.1%가 ‘TV가 잘 안 나와 유선방송에 가입했다’고 응답했다. 일반 TV안테나를 통해 지상파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TV가 잘 나온다’고 응답한 사람은 54.1%에 불과했다.

▽난시청은 시청자 스스로 해결?=KBS 집계와 실제 난시청 가구 수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KBS의 난시청 인정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 시청자들이 수신료를 면제받으려면 KBS의 현장 실사를 거쳐야 하나 산간지역의 구릉 같은 자연적 장애물이 아닌 도심의 건축물 장애에 의한 난시청은 수신료 면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KBS는 도심형 난시청의 경우 전파장애를 일으킨 건축물 주인이 장애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 그러나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에서는 난시청 원인 제공자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매달 KBS 수신료 2500원 외에 5000∼1만8000원을 더 들여 유선방송이나 위성방송에 가입해 난시청을 스스로 해소하고 있다.

부산 북구에 살고 있는 이양수(李諒洙·42)씨는 “KBS가 세금이나 다름없는 수신료를 수백억원씩 거둬들여 직원들의 월급을 올리는 데만 쓰지 말고 난시청 지역 해소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난시청 해소 대책 실종=방송위원회는 현재 KBS 1TV를 기준으로 난시청 지역의 면적비율은 전 국토의 12.7%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KBS측은 난시청 해소를 위해 1981∼97년 3차에 걸쳐 방송망 확장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지금은 디지털방송 전환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방송망(아날로그) 확충 사업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KBS는 그나마 많지 않은 난시청 해소 예산마저 2001년 48억원에서 2002년 24억원으로 절반가량 줄였다. 이는 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과 공영성 강화’를 강조한 KBS의 방침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조은기(趙殷基)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의 기본의무는 지상파 TV를 가정용 안테나 하나만으로도 불편 없이 보도록 해 시청자들의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KBS가 NHK나 BBC에 비해 난시청 해소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보장해줘야=KBS는 수신료가 난시청 여부를 떠나 공영방송을 위해 조세처럼 내야하는 ‘특별부담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수신료의 가장 큰 명분은 난시청 해소다.

KBS는 최근 수신료 분리 징수 움직임에 대응한 ‘수신료 홍보 방송’을 통해 “수신료는 방송 시설을 유지 운영하고 산간벽지와 도서지역 등의 난시청을 해소하는 데 소중히 쓰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1994년 KBS가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할 당시 내건 3대 명분도 △1TV 광고 폐지 △공영성 강화 △난시청 해소였다.

박병국(朴炳國) 전 전국농민단체협의회장은 “중장년층이 많은 농어촌에는 인터넷보다 ‘TV 난시청’이 정보격차의 더 큰 원인”이라며 “수신료 면제라는 소극적 방안이 아니라 지상파 중계소를 늘려 TV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공영방송인 KBS의 일차적인 임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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