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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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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방영된 TV연설을 통해 “소련이 미국에 핵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미사일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전격적으로 쿠바 해상 봉쇄를 명령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D-13’의 첫 장면은 핵무기가 폭발할 때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으로 뒤덮인다. 로저 도널드슨 감독은 “그 시절 일기를 쓰면서도 내일을 맞을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역사는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먼저 놀라 눈을 끔벅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미사일 철거를 명령한다.
케네디는 쿠바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군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상봉쇄를 결정했다.
봉쇄라는 말 대신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격리조치’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을 워싱턴의 소련대사관에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강온(强穩)을 오가는 케네디의 ‘쿠바 해법’은 외교사에 명언을 남기고 있다. “협상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두려움 때문에 협상을 해서도 안된다.”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쿠바사태 이후 급속히 해빙무드에 접어들게 되는데, 역사가들은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에게 좀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냉전이 종식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오늘날에도 쿠바의 교훈은 살아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쿠바 해상 봉쇄를 ‘현재(顯在)하지 않는 위협’에 대한 선제(先制) 조치로 이해한다. 미국이 이라크를 친 것은 잠재적 위협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었다는 것.
그러나 외교전문가들은 케네디가 당시 쿠바를 침공하지 않을 것을 소련에 약속했음을 상기시키며 이는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의 ‘북핵 해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채찍이 먼저냐, 당근이 먼저냐. 그때나 지금이나 선택은 여전히 미국에 달려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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