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구리재와 하늘재]정상에서 맛보는 ‘신라의 정취’

  • 입력 2003년 9월 10일 14시 19분


말구리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간간이 섞여 있는 침엽수림.
말구리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간간이 섞여 있는 침엽수림.
말구리재는 고요하다. 자신의 옛 영화를 추억하는 양 쓸쓸하게 그냥 거기 존재한다. 이제 이 길을 통해 충주, 청주 혹은 경성으로 발길을 다잡는 나그네는 없다.

도시 이름부터 순박한 문경 점촌. 1970년대 석탄 광산으로 흥하여 ‘경북 점촌에서 돈자랑 하지 말라’던 소문은 오간 데 없다. 점촌에서 출발한 버스가 가좌목에 이르자 식당 하나 없는 소박함에 놀라게 된다. 가좌목(佳佐目)은 홍건적의 침공을 받아 복주로 피난 온 고려 공민왕이 이곳의 산수가 수려하고 주민들의 정성이 지극하다 하여 붙인 이름.

“총각이래요, 아저씨래요? 총각이면 사위 삼으려고 그래요. 우리 집에서 자고 가래요.” 마을 어귀에 모여 있는 중년 아낙들이 짓궂은 농을 걸어온다.

행정구역상 경상도지만 강원도 사투리가 살포시 묻어나온다. 구비구비 민가를 지나 말구리재 입구에 당도하니 예상치 못한 규모에 마음을 뺏긴다. 탁 트인 전망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굽이길. 인적 없는 산중에 펼쳐져 있는, 2차선 도로를 내고도 남을 만큼 널찍한 옛길은 놀라움 그 자체다. 문경시 산북면 가좌목에서 문경읍 갈평리까지 6.8km에 이르는 말구리재는 신라시대부터 이웃한 하늘재(2km)와 함께 널리 애용되던 길이다. 말구리재는 마전령(馬轉嶺)이라 불릴 정도로 말이 달리기 좋게 포장되어 걷기에도 그만이다.

1시간 남짓 계속 걸으니 말구리재 정상에 다다른다. 사방천지가 온통 녹색인데 인적은 없고 곤충들만이 이방인을 반긴다.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를 3시간 남짓 계속 가니 민가가 나타난다. 바로 말구리재가 끝나는 갈평마을. 물소리로 뒤덮인 마을에는 사과 향내가 그윽하다. 관음리에서 시작하는 하늘목이 저만치 눈에 들어온다. 말구리재에 만족 못하는 이라면 하늘재에 가보는 것이 좋다. 관음리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다면 걸어가는 것도 좋다. 하늘재는 한반도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신라 제8대 아달라왕(서기 156년)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고 한다. 깨끗하게 포장돼 있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신라의 정취가 정겹게 펼쳐진다.

■ 글·사진/ 정호재 기자

◈ Tips

- 교통: 대중교통을 이용해 문경시(점촌)에 도착한 뒤 터미널 앞에서 가좌목행 시내버스를 탄다(하루 5회: 오전 7시10분 이후 2시간30분 간격). 갈평리행 버스는 하루 20회 운행한다(오전 7시30분~오후 6시35분).

- 숙박·먹을거리 : 김룡 송어장 가든(김룡사 입구 043-553-2211), 새재골(갈평리에서 문경읍 가는 길에 위치, 043-571-9980)은 나물 맛이 일품.

- 볼거리 : 김룡사, 갈평리 오층석탑, 관음리 석불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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