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어린이집 인기‘짱’ 남자교사 김진욱-심도현씨

  • 입력 2003년 5월 6일 16시 36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사는 두 남자 선생님이다. 지난달 30일 어린이집에서 심도현 교사(왼쪽 사진)가 아이들과 노래에 맞춰 손동작을 함께 하는 동안 김진욱 교사(오른쪽 사진)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사는 두 남자 선생님이다. 지난달 30일 어린이집에서 심도현 교사(왼쪽 사진)가 아이들과 노래에 맞춰 손동작을 함께 하는 동안 김진욱 교사(오른쪽 사진)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서울대 이순형 교수(아동학)는 지난해 말 서울대 후문 옆 서울대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날 오전 7시반경이었는데 현관에 남자신발 한 켤레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혹시 도둑이 든 것은 아닐까?”

초대 원장으로서 어린이집을 자기집처럼 드나드는 이교수였지만 캄캄한 새벽에 혼자 누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연 순간 전나무에 별모양으로 종이를 접어 붙이는 데 몰두하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사람은 물론 새벽이 왔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느라 밤을 새워 얼굴은 초췌했지만 눈은 별처럼 반짝거렸다.

# 산에도 오르고 연못에도 가고…

방과후반 교사 김진욱씨(31). 어린이집 교사 25명 중 가장 인기있는 선생님으로 꼽힌다. 훤칠한 키에 미남이기 때문일까?

“우리말을 잘 알아듣기 때문이지요.”

“우리만큼 장난꾸러기이지요.”

방과후반뿐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과도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의 말이라면 귀신같이 알아듣는다. 나이가 어리거나 발음이 불분명해 엄마밖에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의 이야기라도 김씨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아이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와 통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누워 얘기하고 싶다면 같이 누워 얘기합니다. 방과후반 프로그램요? 놀죠. 어울려 노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적입니다. 산에도 오르고 댐이랑 연못에도 가고 동네문화관에서 책도 읽고. 서울대 관악캠퍼스와 신림동 봉천동 일대가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죠.”

얼마 전 한 아이가 개구리알을 가져왔다. 그날 주제는 개구리알이 되고 올챙이 기르는 법과 개구리의 먹이로 주제가 확산된다.

한 아이가 보자기를 둘러 쓴 날은 갑자기 주제가 신부로 변해 결혼식으로까지 확대된다.

또 다른 남자교사 심도현씨(24·서울대대학원 아동학과 휴학)는 김씨의 인기비결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심씨가 ‘방과후반’ 보조교사로 있던 지난해 말 청소시간.

교실 청소 역시 놀이처럼 책상 걸상을 다 치우고 트리오를 풀어 아이들이 맨발로 수세미를 밀고 다니며 한다. 김씨가 아이들의 빨간색 치약을 짜서 바닥에 뿌리는 것을 보고 심씨가 물었다.

# 치약 뿌려 청소하면 재밌겠죠?

“김 선생님, 치약으로 닦으면 더 깨끗이 닦이나 보죠?”

“아니, 그러나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재미있어하니까.”

그러나 김씨는 전혀 어울릴 것 같이 않게 공대 출신이다. 섬유업체를 경영하는 아버지를 돕겠다며 3수까지 하면서 입학한 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 “섬유랑 비디오필름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학년이 올라갈수록 제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뭔가 궁리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제 코드에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김씨가 아이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입학 전부터였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 시립병원 뒤편 폐결핵 환자촌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였는데 아동반을 맡아 스무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봤다.

또 대학에서 ‘농활’을 가서 부녀반을 맡았는데도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과 노는 일이었다. 그래서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공대 3학년 말 수능시험을 다시 본 뒤 소비자아동학부에 지원했다.

“면접시험 때 신분증이 필요해 공대 학생증을 내밀었더니 면접담당 교수가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공대졸업 후 학사편입을 하거나 대학원에 입학하라고 권했어요. 그래서 공대 4학년때 부터 편입준비를 하며 아동학 가족학 과목을 골라 들었죠.”

그때부터 김씨는 여학생들이 절대다수인 소비자아동학부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4년 전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 졸지에 청일점으로 정교사까지 됐다. 올봄부터 심씨가 1년간 정교사로 일하게 돼 청일점은 면했지만. 김씨는 지난해 봄 소비자아동학부 학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입학을 준비 중이다.

# 버스 타면 혼자 내릴줄 알아야지!

“원하는 게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할 수 있어요. 몇 살 때 뭐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래서인지 김씨는 아이가 늦더라도 다그치지 않는다. 심씨는 김씨로부터 여유와 배려하는 마음을 배웠다고 말한다.

“부모나 교사나 아이가 늦으면 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꾸 부담을 줍니다. 김 선생님은 아이가 힘들어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기다려줘요.”

김씨의 보수는 월 110만원. 공대후배와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하숙을 하는데 월 27만원이 든다. 적금도 들고 용돈 쓰는 데 부족함은 없다고.

아이들에게 아쉬운 점 한 가지를 들어보라고 요구했다.

“아이들이 자기 주변을 탐색할 기회가 원천봉쇄당해 수동적이 돼 가고 있어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버스를 타면 엄마들은 아이에게 내릴 곳을 얘기하지 않고 벨을 누르고 내릴 때가 돼야 아이손을 잡고 ‘내리자’고 말합니다. 아이는 친구들과 떠드느라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전혀 긴장을 안 해요. 저는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가는지 스스로 파악해 미리 내릴 준비를 하라고 시킵니다.”

김씨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주위에서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자랑했다.

“무릎 팔 어깨…더 이상 뽑아낼 것이 없어요. 다만 공부하고 재충전해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요.”

심씨가 다시 거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열정은 너무나 충만해 아무도 따라갈 수 없어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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