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마지막 로맨티스트 조병화

  • 입력 2003년 3월 1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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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운 조병화(片雲 趙炳華·82) 시인이 8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시단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문학평론가 김재홍)가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부재의 공간에서 선후배 및 동료 문인들은 기억의 자락에 새겨진 고인의 모습을 추억할 뿐이다.

허영자 시인(65)은 “한국의 가장 낭만적인 서정시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퍼내도 퍼내도 넘치는 샘물과 같았어요. 평생 시를 쓰셨던 그 풍요로운 감수성을 늘 부러워했지요.”

제자인 시인 정호승씨(53)는 “시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늘 말씀해 주셨다”며 “시를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얼마나 살갑게 대해 주셨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쉽고 아름다운 시어로 삶을 노래한 편운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평단 일부에선 철학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인 이성부씨(60)는 “‘쉬운 언어로도 일상을 사색적으로 또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난해해야만 철학이냐’하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얘기했다.

편운의 면면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잊지 못한다.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시인이면서도 그의 생활은 빈틈없고 규범적이었다. 파이프 담배와 베레모로 기억되는 멋쟁이 편운의 ‘포켓치프’는 낡은 머플러의 귀퉁이를 잘라 만든 것이었다.

오세영 교수(61·서울대)는 시계처럼 정확했던 편운의 일상을 회상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서 그날 할 일을 정리한 뒤 오전 6시면 혜화동 사무실에 나와 계셨죠. 그때부터 후배들이 보낸 책과 편지를 꼼꼼히 보고 답장을 쓰셨습니다.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드셨고요. 그분께는 정해진 일상의 ‘틀’이 있었지요.”

편운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 전윤호씨(39)는 편운의 엽서를 받은 적이 있다. “보내드린 시집을 읽고 직접 만든 엽서에 친필로 평을 써서 보내주셨더라고요. 워낙 자상하기도 하셨지만, 그 엽서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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