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현악4중주단 해체

  • 입력 2002년 12월 11일 00시 12분


‘현악 4중주의 국가 대표’로 불려온 금호현악4중주단이 12년의 역사를 접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 1990년 창단이래 금호현악4중주단을 지원해온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은 10일 “지난달 말 금호현악4중주단을 해단했다”고 발표했다.

해단은 음악팬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4중주단은 올해 초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문화홍보외교사절로 위촉됐으며, 지난달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로부터 ‘올해의 메세나 대상’을 받는 등 활약상을 인정받았기 때문. 무엇보다 박성용 명예회장의 ‘실내악 육성’ 의지가 확고했기에 해단 소식을 들은 음악인들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악단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논의돼온 일”이라며 담담해했다. 정혜자 금호현악4중주단 상무는 “단원들이 자주 바뀐 게 해단의 직접 이유”라고 밝혔다. 박 명예회장도 성명서에서 “화합이 생명인 실내악단의 속성상, 잦은 구성원 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악단은 창단 이래 아홉 차례나 멤버가 바뀌어 앙상블을 이루기 어려웠다. 현재는 창단 멤버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93년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 한양대 교수가 리더로 영입된 뒤에도 나머지 전 단원이 두 차례나 바뀌었다. 김 교수는 “솔리스트로 대성하기를 원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실내악단 활동을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한 전직 단원은 “박 명예회장은 그동안 쏟았던 지원이면 세계 10위 이내의 연주단이 됐어야 하는데 연주자가 자주 바뀌어 앙상블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음악인들은 서운해할 게 아니라 해단을 초래한 풍토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인들은 이번 해단이 솔로가 특히 우대받는 국내 음악계 풍토상 예견된 일이라고 말한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유학시절, 일본 음악인들은 통상 공부를 마친 뒤 악단원 활동을 바라는 데 비해, 한국 음악인들은 ‘솔로로 활동하며 이름 값을 높이고 대학에 자리를 얻어 레슨으로 돈벌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더라”고 전했다.

이런 풍토에 대해 국내 음악계의 자성이 없는 한 장영주 장한나 이유라 등 이름난 솔리스트들에 비해 교향악 활동이 세계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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