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뷰티]‘프레시’ , 화장품으로 가꾼 ‘아메리칸 드림’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6시 11분


유기농산물을 주 재료로 한 화장품 라인 ‘프레시(fresh)’의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왼쪽)과 알리나 로이버그 부부./신석교 기자
유기농산물을 주 재료로 한 화장품 라인 ‘프레시(fresh)’의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왼쪽)과 알리나 로이버그 부부./신석교 기자
구 소련 출신의 이민자 레브 글레이즈먼(41)과 알리나 로이버그(41) 부부는 1991년 미국 보스턴 트레몬트 거리에 자신들이 직접 만든 화장품을 파는 가게 ‘프레시(fresh)’를 열며 ‘24시간 주문 가능’ 팻말을 내걸었다. 매장과 집이 가까워 밤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주문 전화를 받았다. 로이버그씨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깜빡 졸다가도 전화벨이 울리면 낭랑하게 외쳤다.

“네, 프레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열악한 ‘가내 수공업’으로 시작한 이들의 화장품 사업은 현재 보스턴의 뉴베리거리,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와 스프링, 블리커 거리 등 동부의 유명 쇼핑가마다 점포가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확대됐다. 동부 여피들 사이에서 ‘프레시’는 고가의 자연주의 화장품의 대표격으로 여겨지게 됐다. 2000년에는 루이뷔통이 소속된 ‘LVMH’그룹이 제품연구, 유통 등에 ‘동업’관계를 요청해 와 계약했다.

가난한 이민자로 출발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 ‘글로벌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최근 ‘프레시’ 한국 1호점 개장을 기념해 서울을 찾았다. 매장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남편 글레이즈먼씨는 19세에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온 뒤 결혼 전까지 치과 기공사로 일했다. 아내 로이버그씨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7세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와 파슨스디자인학교에서 공부한 뒤 앤클라인, 제이크루 등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색감이 뛰어난 아내가 색조 메이크업 라인을 개발했고 후각이 민감하고 섬세한 성격인 저는 모든 제품의 향과 질감을 결정하고 있죠. 화장품 사업은 결혼 직후부터 함께 구상해 1년 만에 숍을 열었습니다. 컨셉트는 가격에 상관없이 몸에 좋고 자극이 없는 제품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개업 후 3년간은 비누만을 생산하다가 차차 보디케어 제품 전반으로 종류를 넓혀나갔다. 프레시의 화장품들은 설탕, 콩, 우유, 쌀 등 식재료를 주 원료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두 사람은 여기에 더해 각 나라의 민간 미용법을 수집해 제품화했다.

따뜻한 정종으로 세수하는 일본식 미용법을 응용한 ‘사케 베스’, 예부터 여드름과 가려움증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이탈리아 노체라 엄브리아 지방의 흰색 진흙 성분이 든 비누 ‘엄브리안 클레이’, 상처에 갈색 설탕을 바르는 러시아 할머니식 민간요법을 응용한 보디케어 제품 ‘슈가 시어버터’ 등이 프레시에 성공을 안겨준 인기상품들이다. 머지않아 생선 살을 연하게 해주는 와사비 성분이 든 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부부가 설정한 프레시의 고객 타깃은 처음부터 대단히 구체적이었다.

“도시에 사는 중산층 또는 상류층, 패션 혹은 시사잡지를 매달 읽을 만한 센스가 있으며 ‘맥도널드’나 ‘코카콜라’를 싫어하는 사람들. 주말에 ‘월마트’에서 일주일치 인스턴트 식품을 사놓는 대신 매일 동네 모퉁이 가게에서 빵 한쪽, 고기 한 줌을 사다 먹는 사람, 건강에 관심이 많지만 병적으로 집착하지는 않는 사람들이죠.”

두 사람은 ‘프레시’의 본사가 있는 보스턴이 성공의 배경이었다고 분석한다.

“보스턴은 소비수준이 높은 학원도시입니다. ‘프레시’의 첫 제품은 5달러짜리 비누였어요. 비누 하나에 5달러라면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고개를 내저었을 거예요. 하지만 ‘몸에 좋은 무언가’를 찾고 있던 보스턴의 엘리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죠.”

마치 식품처럼 성분에 대한 설명이 빼곡히 적힌 ‘프레시’의 제품설명을 깐깐하게 읽고 있는 모습 자체가 특정 라이프 스타일의 표상처럼 부각됐다는 것이다.

능력과 아이디어 만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낸 부부는 꿈을 대물림할 야심을 갖고 있다. 현재 큰딸 타이스(9)는 사립 초등학교인 ‘체스넛힐’에 다니며 요가 발레 드라마 및 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둘째딸 달레스(5)도 발레와 수학 교실에 다닌다.

“두 아이를 모두 사립학교에 보낸 이유가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믿으시겠어요? 에스티 로더 여사의 손녀딸 에어린 로더처럼 가업을 물려받는 일이 생길 때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지요.”

현재 프레시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은 세안용 비누부터 립스틱 등 색조 화장품, 향수까지 100여종. 가격대는 1만∼12만원대.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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