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밴드 평양체험기]"남한 놀새떼" 소개에 웃음바다

  • 입력 2002년 10월 1일 19시 02분


평양에서 공연하는 윤도현 밴드.
평양에서 공연하는 윤도현 밴드.
《‘오! 필승 코리아’의 주인공 ‘윤도현 밴드’가 MBC ‘2002 평양 특별 공연’에서 북한 청중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북한에서 공연한 첫 록밴드인 이들은 29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무대에서 ‘오! 통일 코리아’ ‘뱃노래’ 등으로 록을 선사해 또다른 ‘문화 충격’을 줬다는 평을 들었다. 윤도현 밴드의 보컬 윤도현에게 5박6일간의 북한 체험을 전해들었다.<편집자>》

25일 정오 무렵.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평양이 시야에 들어왔다.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가 멍해졌고 가슴만 벅차올랐다. 일종의 환각 상태같았다.

순안 공항에서 북한 땅을 밟을 때 동행했던 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첫 발을 내딛는 그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우리(윤도현 밴드)는 음악적으로 이방인이었다. 그곳에서 록밴드 공연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안내원은 우리를 ‘전자악단’으로 불렀다. 친한 안내원이 우리 노래를 듣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게 음악이요”라며 낯설어했다.

“평양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가 좋으니까 음악은 안들어도 됩니다.”

이렇게 말하며 웃어 넘겼지만 속으로는 크게 걱정됐다.

‘청중의 반응이 썰렁하면…’

29일 공연에서 ‘우리’를 소개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안내원에게 물었다.

노랑머리와 빵모자 등을 생경해하던 안내원은 “‘놀새떼’같구만”이라고 했다. 놀새떼는 남한의 오렌지족 한량 등을 가리키는 북한의 속어다.

무대에서 우리를 ‘놀새떼’라고 소개하자 그동안 무표정했던 청중들이 박장대소했다. 그 뒤 공연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큰 반응을 얻었다. 아마 ‘뱃놀이’ ‘아리랑’ 등을 록으로 부른 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이날 공연은 조선중앙TV가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이런 경우 북한에서 시청률이 90%를 웃돈다고 했다. 그 효과는 공연 뒷날(30일)에 실감할 수 있었다. 북한에서 자고 나니 스타가 됐던 것이다.

숙소인 고려호텔의 여성 종업원들이 “어디 갔다 왔시오. 감동적이었시오. 모자 좀 벗고 다니라”며 아는 체 해왔다. 백화점에서도 다 알아봤다. 멤버들 사이에서 북한의 팬클럽을 만들자는 소리도 나왔다.

유적지 관광은 다니지 않아 안내원에게 “게으르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도시보다 시골 사람이나 서민들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안내원이 “윤선생이 그런 면이 있냐. 정이 많다”고 말했다.

29일 오전 지하철 관광 코스에는 합류했다.

이날은 일요일이어서 지하철이 평양 시민들로 북적댔다. 남쪽에서 온 가수라고 했더니 모두 반가워했다. 옆에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예민한 사안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북한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경기 파주 출신으로 20여년간 임진강을 보고 자란데다 아버지 고향도 경기 장단이어서 북한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 염원이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한의 월드컵 4강 신화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부른 ‘오! 필승 코리아’라는 응원가도 여성 종업원들이 따라 부를 정도였다. 한 여성 ‘동무’는 멤버가 체육복을 입고 공연하는 것을 보고 “월드컵 응원때도 그 차림으로 공연했냐”고 눈총을 줬다.

북한에서 5박6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기간이었다. 북한의 젊은이나 남한의 젊은이가 다르지 않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게 수확이었따.

평양에서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

‘꿈속에서 보았었지 붉은 깃발 날리던 이 거리에/어느새 난 두발딛고 그 깃발앞에 서서 노래하네’(제목 미정)

이 노래를 평양에서 부르고 싶다.

정리〓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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