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개소문-궁예의 개혁 독선탓에 실패˝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18분


◁연개소문 ▷공민왕
◁연개소문 ▷공민왕
“실패한 정치가가 양산될 우려가 큰 어려운 시기를 맞아 우리 역사상에서 실패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검토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위한 교훈을 얻자.”

역사 전문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 최근호(제31집·일조각)는 이런 취지에서 ‘실패한 정치가들’을 특집으로 다뤘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들의 자격과 자질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실패한 지도자들의 실패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본 특집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김옥균 ▷김홍집

이번에 집중 조명한 정치가는 8명. 고구려의 강력한 실권자였던 연개소문(淵蓋蘇文), 후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제일 먼저 장악했던 궁예(弓裔), 원나라의 침탈기에 자주적 개혁을 시도했던 고려의 공민왕(恭民王), 임진왜란 직후 왕권 강화를 추진하다가 쫓겨난 조선의 광해군(光海君), 개화기에 갑신정변을 주도한 후 이국 땅에서 살해당한 김옥균(金玉均), 역시 개화기에 개혁을 서둘다가 임금과 백성에게서 버림받은 김홍집(金弘集), 광복 직후 제1인자로 군림했으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피살된 여운형(呂運亨), 4·19혁명으로 들어선 민주 정부를 이끌다가 군사 쿠데타에 의해 물러나야했던 장면(張勉).

이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격동의 시기를 살며 지도자의 위치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다가 실패자로 떨어지는 굴곡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기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현실을 앞서가며 개혁을 주도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았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노태돈, 고려대 민현구, 연세대 유영익, 미국 펜실베니아대 이정식, 동국대 이기동 교수 등 8명의 역사 연구자들의 각 인물들을 분석한 데 따르면 이들이 실패한 배경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연개소문이나 궁예처럼 지나치게 독선적일 경우 실패한다. 이들이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권력은 10년을 가기 힘든 법. 어느 순간 권력자나 그의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해도 이를 수습할 제도적 장치는 이미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에 와 있다.

◁여운형 ▷장면

광해군이나 김옥균, 김홍집처럼 국내 역량의 결집을 소홀히 한 채 대외 관계에만 주력할 경우에도 위험에 처한다. 결국 내부의 반발에 부딪힐 뿐 아니라 외국에 대해서도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실패한다. 광해군의 경우 중국의 명청(明淸) 교체기를 현명하게 대처했지만 자신을 잡으려는 쿠데타군이 왕궁에 진입하자 어느 누구도 이를 제대로 막지 않았다.

여운형이나 장면은 위급한 사태에 대처할 치밀한 사고방식과 결단력을 갖추지 못한 지도자로 지목됐다. 그러니 격변기를 이끌어 갈 정치가로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여운형은 당대의 호방한 호걸이었고 장면은 교육자 겸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위기의 사태에 기민하게 대처하며 혼란을 극복하는 데는 적절한 성품이 아니었다.

공민왕처럼 예술적 감성과 인간애가 넘치는 사람도 냉철한 판단을 필요로 하는 정치가로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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