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캔디스 신발 광고

  • 입력 2002년 5월 16일 14시 29분


릴킴의 이미지는 도발적이고 신성파괴적이다.
릴킴의 이미지는 도발적이고 신성파괴적이다.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누가복음 6장 20절에 나오는 이 유명한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함께 교리나 율법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이 실천해야 할 구체적 행동 규범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까닭에 기독교의 가치관이 일반인의 생활 속에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약한 자, 못 가진 자 등 심적 아픔을 안고 있는 자들이 선한 자로 간주되었기에 강한 자, 가진 자들은 상대적으로 악한 자처럼 생각되었다.

니체는 이런 기독교적 도덕관을 노예도덕으로 간주했다. 자신의 불행을 현실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영적 세계에서 위안받으려는 나약한 인간보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강한 인간을 고귀한 자로 여겼다. 그가 말한 ‘초인’이다. 그 초인은 실질적 삶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내부로부터 넘쳐 흐르는 힘을 소유한 자다. 인간이 의지해야 할 것은 그가 보기엔 자신을 약자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노예적 가치관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허무한 삶이 무한 반복되더라도 그것을 긍정하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의 사상의 중심축인 ‘힘에 대한 의지(will to power)’는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믿었던 것이다.

미국의 여성 의류 및 신발 브랜드 캔디스(Candie’s)의 광고는 그런 니체 식의 솟구치는 긍정의 힘을 에로틱한 힘의 분출로 변주시킨 광고다. 수녀의 무리 위에 버티고 선 맨 가슴이 거의 드러난 여자는 미국의 섹시 힙합 스타 릴킴(Lil’Kim)이다. 뒤의 배경에선 휘황찬란한 조명이 그녀를 비추는데, 자세히 보니 불이 들어온 부분이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렇게 따져 보니 그녀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단한 풍자다. 마치 그녀는 최신 버전의 산상수훈에서 이런 가르침을 설파하는 것 같다.

“금욕하는 자가 천당에 갈 수 있겠느냐. 내면에서 차오르는 욕망에 몸을맡겨라.하늘나라가 너희 것이다.”

가릴 수 있는 데까지 가린 수녀에 대비되어 노출시킬 수 있는 데까지 노출시킨 릴킴은 금욕을 추구하며 자연 발생적인 에로스를 터부시하는 기독교 윤리의 경직성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다. 수녀복에 결박당한 에너지를 풀어헤칠 것을 요구한다.

그 거부의 몸짓 중심에 군화 스타일의 신발 캔디스가 놓여 있다. 성스러운 후광 대신 대중문화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쇼 프로그램의 조명으로 이루어진 십자가, 그것을 배경으로 예수 흉내를 내고 있는 대중 스타가 마치 군홧발로 짓밟듯 성역 위에 군림하고 있다. 결국 이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의 당당한 물신의 이미지를 고통받는 십자가의 예수를 빌려 표현함으로써 신성파괴적 도발을 자처하고 있다. 기존의 가치관에 신랄한 독설을 퍼부은 디젤 광고의 사진 작가 데이비드 라차펠의 작품인 이 광고에서도 그 특유의 과장과 어긋남이 난무하는 난장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신은 죽었다’를 외쳤던 니체가 자본주의의 꽃, 광고를 통해 부활했다. 한편의 광고를 통해 가장 페티시하고 가장 에로틱한 니체의 변종을 만난다.

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