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만들기 36년 외길 이승준 풍국산업 회장

  • 입력 2002년 3월 19일 17시 20분


“직원 6000명을 거느리고 있다 해도 가방 만드는 사람은 역시 ‘가방장이’입니다.”

‘가방장이’를 자임하는 풍국산업 이승준 회장(65). 사람을 만나면 얼굴 다음으로 시선을 두는 곳이 가방이다.

“새로운 스타일인지, 명품을 흉내낸 모사품인지, 주인이 가방을 아끼는지, 멋을 아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한번도 딴 생각 안하고 36년간 가방만 만들었어요.”

우리나라는 가방문화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이 회장의 분석. 예전엔 물건을 보자기에 싼 보따리가 고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이나 사무원을 제외하고는 서류가방을 거의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은 필요에 의해 또는 멋으로서 가방이 애용된다.

이 회장이 처음 가방을 만들게 된 것도 수출을 위해서였다. 1960년대 대기업에서 섬유수출을 담당하다 바이어로부터 가방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독립해 66년 가방회사를 세웠다.

이 회장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OEM)으로 아디다스 골드파일 아이그너 델시 쌤소나이트 등 세계적인 브랜드의 가방을 만들어 왔지만 패션상품이 국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경제대국이라는 일본에 내세울 만한 브랜드가 있나요? 미국 역시 여행용 가방 중 유명 브랜드가 있지만 유럽의 가방에서처럼 ‘장이의 맛’은 느낄 수 없지요. 가방 만드는데도 문화와 역사가 기본이 된다는 얘깁니다.”

이 회장은 항상 가방을 ‘지니고’ 다닌다. 그래야 소비자의 요구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인데 직접 사용하는 가방이 100개는 된다. ‘움직이는 사무실’(비즈니스가방)에서 ‘나는 옷장+화장대+욕실’(여행용 가방)까지 가방은 만들수록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엄밀히 말해 50대 이상을 위한 가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50대는 30, 40대의 가방 중 세련되고 품격을 지킬 수 있는 가방을 고르면 된다. 60대는 아무래도 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재가 가벼운 것을 선택한다. 천가방은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가죽가방이 역시 품위가 있다. 2년전 대표이사직을 동생 이청원 사장에게 물려준 이 회장은 건강비결로 새벽 4시반에 일어나 땀이 날 정도로 맨손체조하고 출근해 하루종일 백화점과 공장을 돌아다니는 것을 꼽으며 ‘은퇴란 없다’고 강조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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