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日잡지 연재 몽양 일대기 다룬 '나의 아버지 여운형'발간

  • 입력 2001년 12월 19일 17시 58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여연구(96년 작고)가 쓴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1886∼1947)의 전기 ‘나의 아버지 여운형’(김영사)이 발간됐다.

이 책은 일본에서 ‘통일평론’이라는 잡지에 연재된 것을 국내에서 편집해 발간한 것으로, 광복 직후 혼란기에 남북 및 좌우합작을 주장하며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끌다 암살 당했던 비운의 지도자 여운형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본 딸의 기록이다. 저자는 당시 격변기의 이면사뿐 아니라 가족간의 사적인 일들까지 평이한 문장으로 차분히 서술해 부녀간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이 책에는 그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여운형과 일본천왕과의 만남에 관한 내용을 담은 여운형의 조카 여경구의 유서가 실려 있다. 유서에 따르면 여운형은 여경구와 함께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호위병들을 헤치고 승용차에서 내리는 일본천황에게 직접 다가갔다.

총을 든 호위병들 앞에서 목숨을 걸고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여운형을 보고 일본천황은 “여 선생이 조선 사람인 것이 아깝다”며 호위병들에게 “길을 내주고 나를 대신해서 문밖까지 안전하게 배웅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천황과의 만남에 관한 내용은 여러 오해가 생길 것을 염려한 여운형이 언급을 회피해 그 동안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었다.

이 책에서는 여운형이 세계 곳곳을 다니며 민족의 활로를 찾기 위해 애썼던 ‘국제적 감각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일본 천황뿐 아니라 중국의 손문, 소련의 스탈린, 미국의 하지 중장까지 만나 조선의 독립과 통일을 당당히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여연구는 아버지가 당시 미소의 압력과 좌우익의 격렬한 싸움 속에서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민족화합을 위해 중도노선을 걸었으며, 뛰어난 국제정치적 감각으로 세계정세를 정확히 파악해 해방 1년 전부터 독립 이후의 일을 대비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밖에도 여운형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을 최초로 번역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 등이 수록돼 있다.

또한 1946년 여운형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 관련 러시아 문서, 같은 해 북조선주둔 소비에트군 민정담당 부사령관이었던 로마넨코 소장과의 대담기록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자료들도 싣고 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