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장군 양승숙 "남편 외조 덕에 좋은 날 왔어요"

  • 입력 2001년 11월 8일 21시 22분


육군본부 의무감실의 양승숙(梁承淑·50)간호담당관 사무실에 들어서자 첫눈에 '여자방'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서양 여인모형의 자기인형이며 선반 한 구석에 놓인 향수병까지….

'최초의 여성 장군 탄생'을 보도하기 위해 몰려온 보도진이 철수한 뒤 비로소 긴장을 풀기 시작한 양장군에게 "장군이기에 앞서 천상 여자시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럼요. 이 헤어스타일도 제가 직접 한건데요"라는 센스있는 답변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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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미용실에 가야 탄생 할만한 세련된 웨이브 머리 스타일이 '프로'에 가까운 실력임을 보여준다. '장군'이라는 사실때문에 공연히 '차가운 사람이 아닐까'하고 오해도 했었다. 자세히 보니 멋스럽게 그린 눈썹 모양도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어요"

6공주 집의 셋째딸이니 그런 실력을 갖추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장군 자매의 첫째 언니 승희씨는 대전 간호전문대 교수. 피아노학원을 경영하다 현재 전업주부로 나선 둘째 승순씨, 간호사 출신으로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고 있는 넷째 순승씨, 중부대 성악과 강사인 다섯째 미숙씨와 충남대병원 수련의인 막내 신승씨까지 자매들의 활약이 놀라웠다.

"아버지가 교육을 정말 중요시하는 분이셨어요.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아버지에게 혼날까봐 벌벌 떨기도 했죠"

95년 작고한 아버지 양희성(梁會聖)씨는 충남 논산시 광석면 면장을 지냈다. 덕분에 여섯자매는 모두 '똑똑하고 예쁘다'는 이웃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아들이 없어서 부모님이 조금은 섭섭해 하시지 않았을까요?" 라는 질문에는 "마음속으로는 그러셨을지 몰라도 내색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당시 부모님 반대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는데…" 라고 말했다.

교수 딸에, 의사 딸에, 이제는 장군 딸까지. 양장군의 아버지도 저 세상에서 기뻐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여군 부하들이 들어와 포옹을 하며 진심어린 축하의 말을 건넸다.

신미영(24·여)하사는 평소 어떠시냐는 질문에 "정말 너무 자상하세요. 저보고는 딸같다고 인생 상담까지 해주세요. 제 일처럼 기쁘네요"라며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남편인 이병웅(李炳雄·56)충남교육청 장학사와는 74년 결혼했다. 이씨는 양장군이 전남대 간호학과에 재학중일 때, 광주 31사단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이 장학사와 양장군은 '친구같은 부부'라는 것이 주위의 평. 아내의 진급 소식에 "정말이냐"며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한 이 장학사는 "외조랄 것도 없는데…. 그냥 마음 편하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 주었을 뿐이죠"라며 겸손해했다.

양장군은 인터뷰에 앞서 기자회견 자리에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놀라웠다. 하지만 취재진 중 유일한 여기자라는 것을 무기로 애교를 떨며 옆에 함께 타고 이동한 차안에서 양장군은 분명히 두 눈을 붉히는 듯 했다.

"기도 덕택인지 엄마가 잘 돌봐주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어엿하게 성장해 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대목에서였다. 양장군은 딸만 둘을 두었다.

이 장학사의 동료 장학사들은 "부부동반으로 회식자리에 나가면 양장군이 말솜씨, 노래솜씨로 좌중을 사로잡는다"고 말했다.

양장군의 18번 은 가곡 비목 . 노래 솜씨는 전율할 정도 로 놀랍다는 평이다.

승진소감을 묻는 질문에 양장군은 "높은 자리에 오기 위해서 이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예요. 간호장교로서 최선을 다하니 좋은 일도 있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양장군은 대령 진급 심사에서 탈락한 뒤 "전역하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남편의 제안을 한마디로 거절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기자회견에서의 일문일답.

-국군 창설 53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장군에 올랐는데.

이번 승진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여군 2400여명의 경사다. 여군들 모두가 맡은 바 제 역할을 다해 준 결과다.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당신 덕분에 승진했다"고 말했다. 딸들에게 자랑스런 엄마가 돼 기쁘다.

-군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는.

성격이 활달하고 체력도 좋은 편이지만 어려서부터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학생 때 간호장교의 활약상을 그린 외국영화 매취 (이동외과병원)를 보고 군인이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여자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은.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장점이 많았다. 간호 행정 등 분야에서 여성의 치밀함과 세심함 등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학교가 존폐의 기로에 놓여 낙담했던 적이 있다. 학생들은 졸업해 나가는데 입학생은 받지 못했다. 빈 교실을 볼 때마다 사지가 잘려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때 여성단체 등이 적극 나서서 도와줬다. 여자이기 때문에 도움이 됐던 것이다.

▲차량-복장 등 100여가지 변화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할 경우 복장을 비롯해 각종 예우 등 약 100가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첫 여성장군을 맞는 군으로서는 이에 대한 규정을 새로 마련해야 할 형편이다.

우선 금테를 두른 5, 6가지의 장군모를 비롯해 정복, 예복, 신발류 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복장에서만 30여가지가 새롭게 바뀌게 된다. 장군에게는 장군화가 별도로 지급되는데 여성장군을 위한 별도의 군화가 제작될 예정이다.

운전병과 전속부관(중위 또는 소위)이 딸린 2000㏄급 이상의 차량이 제공되고, 개인 소지용 권총도 45구경에서 38구경으로 교체된다. 또 장군 전용 식당과 이발소, 화장실 사용을 비롯해 집무실에 장군기, 삼정도(三精刀)를 게시하고 차량에는 ‘별판’을 달 수 있다.

<계룡대=지명훈 김현진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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