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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7일 2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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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거리는 종로3가〓“종로3가 주변은 평일 아침과 저녁 시간에는 학원을 찾는 학생들로, 점심 시간은 한끼 메뉴를 고르는 회사원들로, 주말에는 극장을 찾는 연인 가족들로 늘 북적거려요.”
이곳 상인들은 종로3가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에 대해 ‘교통의 요지’라는 점을 으뜸으로 꼽는다. 지하철 1, 3, 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과 함께 도시형 좌석형버스 공항버스 등 30여개의 버스노선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많아졌다는 것.
또 △종로3가역 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극장가 △노인들이 몰려드는 종묘공원 △종로2가에 밀집해 있는 외국어학원 △종로4가의 종로전자타운(세운상가) △봉익동 귀금속 도매상가 △관수동 휘장품 전문상가 등 종로3가를 둘러싼 ‘특화거리’도 유동인구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노점 전시장〓종로3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노점. 매일 오후 4시경부터 종로3가 보도에는 노점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가로판매점, 구두닦이 부스, 교통카드 충전소 등 정식 영업허가를 받은 보도상 영업시설물까지 포함하면 100여개에 이른다. 꽃 과일 분식 모자 호떡 등 취급하는 물건도 제각각이다. 또 신용카드사 이동통신사 등이 노상에서 펼치는 고객 유치 경쟁도 뜨겁다.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이 철거되면서 노점상들도 된서리를 맞고 있어요.”
요즘 노점상들은 2개 대형극장이 재건축으로 철거되면서 매출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실제로 영업을 계속하는 서울극장쪽은 오징어 쥐포 땅콩 등 ‘극장용 스낵’을 파는 노점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지만 길 건너편은 한산한 모습. 7년 동안 피카디리극장 앞에서 노점을 운영해온 박성내씨(54·여)는 “햇밤이 나오는 10월은 군밤 판매의 대목이지만 극장이 철거되면서 매출도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회사원들의 퇴근이 시작되는 오후 5시경부터 종로 대로변과 관수동 골목은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한다. 가스등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먹장어(곰장어)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회사원들의 모습은 자정 이후까지 이어진다.
▽종로3가는 변신 중〓변화의 첫 테이프는 국일관 드림팰리스가 끊었다. 과거 일류 요정으로 꼽혔던 국일관이 젊은층을 겨냥해 나이트클럽 등을 갖춘 대형 복합상가로 탈바꿈한 것.
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단성사와 명월관 자리에 있던 피카디리극장도 재건축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단성사는 최첨단 복합영화관 ‘시네시티 단성사’(지하 5층, 지상 12층 규모)로, 피카디리는 복합영화관 영화아카데미 테마형 쇼핑시설을 갖춘 ‘피카디리 플러스’로 각각 바뀐다. 준공시점인 2003년이면 저층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종로3가의 스카이라인도 크게 바뀔 전망.
한편 종로구는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사잇길인 묘동 일대를 ‘국악의 거리’로 조성하고 있다. 조성 계획에 따르면 묘동에서 낙원동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전통 악기 판매점과 상설 연주장이 들어서는 국악 타운으로 바뀐다.
이날 저녁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나온 대학생 김모씨(23·여)는 “종로3가는 노점들과 간판, 사람들이 점점이 박힌 거대한 모자이크”라며 “항상 생기가 넘치고 보고 듣고 즐기고 먹고 마실 거리가 많은 ‘5감(感)의 거리’”라고 말했다.
▼전문도매상 골목마다 '빼곡'▼
종로3가 거리는 자생적으로 생긴 전문상가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 봉익동 골목은 종로4가쪽 예지동과 더불어 1400여개의 귀금속 도매상이 모여 있는 한국 최대의 귀금속 도매상가다. 특히 7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단성사 뒤편 봉익동 귀금속 상가는 재료시장과 자체 공장, 도소매 판매망을 갖추고 있어 소매업자는 물론 결혼을 앞둔 부부, 커플링을 사려는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국일관 드림팰리스를 중심으로 한 관수동 일대에는 상패 명패 트로피 등 각종 휘장을 제작해 판매하는 업체들이 몰려 있다. 미로 같은 골목에 250여개 업체 1000여명의 종사자가 근무하는 휘장 전문 상가가 형성돼 있는 것. 수백원짜리 명찰에서부터 수백만원에 이르는 금은 트로피까지 취급하는 상품도 다양하다. 86 아시아경기와 88 올림픽을 치르면서 한국의 휘장산업도 수준급에 올랐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말이다.
한편 종로3가와 2가가 만나는 지점에는 수영복 에어로빅복 무용복 등을 파는 상점 10여개가 밀집해 있다. ‘은나래 오쪼’ 종로3가 지점장인 조혜진씨(35·여)는 “상점들 모두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전국 도매가 이뤄지고 있는 장소”라고 소개했다.
▼'종3' 사창가 대대적 단속?…68년 본보 '나비작전' 기사 눈길▼
“지난 23년 동안 그늘진 윤락지대로 버려진 채 큰 사회 문제가 되어왔던 종로3가 일대 사창가가 없어지게 됐다. 26일 서울시는 ‘종로3가 홍등가 정화추진본부’를 설치, 10월5일까지 이 지역의 윤락여성들을 선도하여 딴 곳으로 옮기고 포주에 대한 채무도 모두 무효화하도록 하는 한편 앞으로 이 지역의 사창가에 출입하는 자는 명단을 공표키로 했다.”
동아일보 68년 9월27일자 3면에 보도된 기사는 종로3가의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25전쟁 이후 종로3가를 비롯한 봉익동 낙원동 묘동 등에 걸쳐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던 윤락가가 68년 9월말부터 이른바 ‘나비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진 것.
10월5일에 보도된 후속기사 ‘종삼 마지막 단속’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72명의 창녀와 이들과 동침한 29명의 남자들을 적발…. 이로써 이 지역에서 윤락행위를 해오던 1368명의 창녀는 모두 딴 곳으로 추방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종로는 1394년 한양이 조선왕조의 도읍으로 정해진 이후 줄곧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로 자리매김돼 왔다. 종로의 옛 이름인 운종가(雲從街)도 이곳에 시전(市廛)이 형성되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였다가 구름같이 흩어진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종로3가는 조선시대에는 색주가 거리, 일제 시대에는 항일적 성향이 짙은 기녀들이 모인 조선인 홍등가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68년 ‘종로정비사업’을 벌이면서 종로3가를 비롯한 종로거리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다. 각각 △1가는 고층 빌딩군이 몰려 있는 업무지구 △2가는 육의전의 전통을 이은 주단 포목점 거리 △3, 4가는 극장가 및 귀금속 휘장품 전자제품 등을 판매하는 전문상가 △5, 6가는 대형 약국, 한약 건재상, 한의원 등 의약품 시장 등으로 발전해왔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