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佛태양극단 '제방의 북소리', 서양이 만든 동양극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22분


연출자 아리안느 므누슈킨
연출자 아리안느 므누슈킨
국내 연극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프랑스 ‘태양극단’의 ‘제방의 북소리’가 12일부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야외특설무대에서 공연된다.

이 극단을 말할 때 여성 연출가 아리안 므누슈킨(62)을 빼놓을 수 없다. 러시아 출신 영화 감독 알렉산드르 므누슈킨의 딸인 그는 유럽의 대표적인 공연 연출가.

그는 1964년 태양극단을 창단한 뒤 프랑스 혁명을 민중의 시각에서 다룬 ‘1789’, 캄보디아의 역사를 서술한 ‘캄보디아 왕, 시아누크 노로돔에 대한 미완의 끔찍한 이야기’ 등 화제작을 무대에 올렸다.

므누슈킨과 그의 극단은 대사 위주의 연극 틀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 아시아적 정신세계의 결합을 통해 세계 연극계에서 ‘전위 극단’의 대명사로 불린다.

국내에 초연되는 ‘제방…’은 여성학자이자 극작가로 므누슈킨의 예술적 동지인 엘렌 식수가 쓴 희곡을 대본으로 했다.

600여년전 극동의 한 나라에서 홍수를 둘러싼 갈등이 격심하게 벌어진다. 지배계층은 홍수의 원인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성(城)을 살리기 위해 수십만 명의 농민이 사는 곳으로 물줄기를 돌리는 음모를 꾸민다.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지배 계층의 비리와 정치적인 조작, 농민의 고통 등 인간 군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식수가 1997년 중국 양츠 강 대홍수를 목격한 뒤 얻은 모티브가 토대가 됐다.

1999년 초연 당시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이 작품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찬사를 보냈고 일본과 캐나다의 해외 공연을 포함해 모두 200여 회나 공연됐다.

‘제방…’은 ‘배우가 연기하는 인형극’의 형식을 띠고 있다. 배우들은 검은 옷을 입은 인형 조작자들에 의해 마치 인형처럼 움직이는 연기를 하게 된다.

최준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는 “이같은 기법은 대사나 배우의 표정에 의해 좌우되는 기존 연극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며 “관객들은 이를 통해 무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연극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방이 터져 세상이 물에 잠기는 마지막 대목에서는 무대가 가라앉고 물이 차 오르는 장관도 연출된다.

태양극단은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연습 기간을 최소 6개월로 잡는 등 뛰어난 완성도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의 대본은 1000여 회나 수정됐고 배우들은 98년부터 3년 간 우리나라 사물놀이, 일본 전통무용인 ‘노’ 등 동양의 전통 음악과 춤을 배웠다.

또다른 볼거리도 있다. 국립극장에는 이들의 공연장으로 사용될 650석 규모의 야외무대 외에도 배우들의 분장과 휴식 공간으로 사용될 천막이 설치됐다. 공연은 오후 7시에 시작되지만 1시간 전에 오면 배우들의 분장과 연습 장면을 지켜볼 수 있다. 공연 중 휴식시간에는 극단이 준비한 요리도 맛볼 수 있다. 이는 태양극단이 본거지인 파리 카르투슈리 극장에서 지켜온 관습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1일 오후 8시 서울 석관동 크누아예술극장(02-958-2696)에서 ‘태양극단의 연극 창작과정’을 주제로 므누슈킨의 강연과 대화 시간을 갖는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공연안내▼

#10월12∼17일 오후 7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야외 특설무대

#3만∼5만원

#02-2274-35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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