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성추행 공개사과문' 서울대 대자보 공방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22분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당연한 징벌인가, 인민재판식 인권침해인가.’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한 서울대 남학생이 피해자측과의 합의에 따라 형사고소 등을 면하는 대신 교내에 공개사과문을 붙였으나 반박문이 나붙는 등 일반 학생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가해 남학생은 공개사과문 이외에 한 학기 동안 자진휴학을 하고 여성단체에서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키로 합의했다.

사건은 6월 문제의 남학생이 동료 학생들과의 술자리를 마친 뒤 여학생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하고 성적 모욕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수치심을 참지 못한 피해 여학생은 고민 끝에 7월 23일 학내 성폭력상담소를 찾았다. 이어 학생회 내에 설치된 비상대책위의 중재에 따라 양측은 공개사과 등 자치적 해결을 하기로 합의했다.

학내 성폭력 사건은 학칙에 의해 교수협의회가 정학 등 징계를 내릴 수 있으나 당사자들끼리 해결하기로 한 것.

남학생은 3일 서울대 도서관 통로와 법대 게시판에 “이번 사건은 비뚤어진 남성 우월주의적 성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공개사과문을 붙였다.

그러자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고 양성간의 대립을 조장한다’ ‘공개사과문은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인민재판’이라는 등 익명으로 된 10여건의 반박 대자보가 붙었다. 또 반박에 대한 재반박문이 붙는 등 치열한 필전(筆戰)이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당초 합의를 주선한 비대위측은 “사건의 공론화가 성폭력 문제 해결의 첫 출발점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사회대의 한 학생은 “실명까지 공개한 것은 오히려 공권력에 의한 형사처벌보다 더 심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창원기자>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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