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책소개 외길 28년 프랑스 TV프로 막 내린다

  • 입력 2001년 6월 28일 18시 58분


지난 28년 동안 프랑스 국민에게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쉽고도 친절하게 안내해준 방송 프로그램 ‘부이용 드 퀼튀르’(문화의 용광로라는 뜻)가 29일 막을 내린다.

매주 금요일 밤 1시간반씩 방송된 이 프로는 그동안 1200여회에 걸쳐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 각 분야의 저명한 저술가 5000여명과 그들의 책을 평범한 프랑스 시민들에게 소개해왔다.

프랑스인들이 ‘용광로의 불’이 꺼지는 것을 진정으로 아쉬워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프로그램 진행자 베르나르 피보(66·사진) 때문.

1973년 4월 ‘따옴표를 여세요’라는 타이틀로 첫 방송을 시작했던 ‘책 길잡이’ 피보는 이제 프랑스 문화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법학과를 졸업한 뒤 기자로 출발한 피보는 38세 때 책과 독자를 잇는 가교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소설과 문학평론집 한 권씩을 내기도 했던 그는 “서툰 작가가 되기보다는 쓸모 있는 기자가 되겠다”면서 책 소개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공정한 선택을 위해 작가나 출판사와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왔다. TV에서 소개할 책 선정에 따라 출판사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백만장자 소설가들이 탄생하면서 엄청난 로비가 있었지만 이를 단호하게 뿌리쳤다.

문화계 인사들은 “피보는 개인 프로덕션을 설립해 독자적으로 방송을 제작해보라는 ‘돈의 유혹’을 모두 뿌리쳤을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생명처럼 여겨 상업 광고에 단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다”며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식인 중 한 명인 레지스 드브레가 82년 “피보는 (TV를 통해) 독재자가 됐다”고 비판했던 건 유명한 일화. 당시 피보는 “TV는 문학 연극 미술 등 문화의 전파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 주목을 끌었다.

프랑스 문학계와 언론은 이달 들어 피보와 그의 TV프로에 대해 극찬하고 있다. 97년 공쿠르상 수상자인 파트릭 람보는 최근 ‘베르나르 피보가 초청하다’라는 책을 써 그의 업적을 기렸다.

피보는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13일자)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에게 봉사하는 자리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진행자의 유명세를 누리려 했다면 프로그램의 진정한 권위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밤 10시 50분부터 2시간 동안 특집으로 꾸며지는 그의 마지막 방송엔 최다출연자 소설가 장 도르메송 등 10명의 문학인들이 출연해 90년대의 문학을 얘기하며 방송 28년을 총정리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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