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개조… 제2인생… "연기는 나의 날개"

  • 입력 2001년 4월 22일 18시 54분


◇일반인들 학원수강 열기

“‘남’의 인생을 통해 ‘나’를 표현한다.” 연기는 더 이상 젊은 배우나 탤런트 지망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기라면 다른 세상의 일로 여겼던 ‘일반인’들이 연기 학원에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 훈련이 ‘취미 생활’ 또는 ‘성격 개조’에 톡톡히 한몫 한다는 ‘입소문’도 상당히 퍼졌고 미취학아동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이‘연기 수업’에 가담하고 있다. 연기 학원에 ‘연령 파괴’와 ‘직업 파괴’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여의도 방송가에 머물러 있던 연기 학원의 지평도 넓어지고 있다. ‘스타 제조’에 승부를 건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체들이 ‘신문화 첨단 기지’로 자리잡고 있는 서울 강남권에 몰리면서 연기 학원들의 ‘강남 러시’가 줄을 잇고 있다.

◇발표력 키우고 적극성 배양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꿔라〓18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MTM.

“자,‘작은 수박’하나.” 강사의 지시에 10여명의 아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조그맣게 입을 오물거리며 ‘미니’ 수박 한 입을 베어무는 시늉을 했다.

“다음엔 ‘큰 수박’하나.”

이번엔 눈을 크게 깜빡이며 우적우적 씹는 흉내를 냈다. ‘스트레칭’과 ‘표정짓기놀이’로 시작된 수업은 연기 연습으로 옮겨갔다. 아직 한글이 낯선 아이들은 강사가 읽어주는 내용을 ‘몽땅’ 외워 버린다.

학부모들은 연기 교육이 아이들의 ‘발표력 증진’과 ‘적극성 배양’에 한몫을 한다고 말한다. 남들 앞에 서는 훈련에 익숙해져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데다 다양한 역할극을 통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과정은 대인관계에 고심하고 있는 성인들에게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연령파괴…주부반 '북적북적'

▽‘제2의 인생’을 찾아서〓같은 시간 옆 반에서는 ‘주부반’ 수업이 한창이다.

복식호흡 때마다 오르내리는 뱃살과 눈가의 주름살이 ‘학생’들의 연륜을 말해 주지만 학습 열기만큼은 뜨겁다. 대부분 중년에 접어든 이 반 학생들은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도 젊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간혹 남자 ‘청일점’도 눈에 띈다. 중소식품회사를 운영하는 박종원씨(50·서울 송파구 문정동)는 “관심은 있었지만 일이 바빠서 포기했던 연기 공부를 취미 활동으로 즐겨 보고 싶어서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상에 지칠 때마다 연기 속 인물로 들어가 잠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연기의 마력”이라고 말했다.

◇연기학원 줄줄이 강남으로

▽가자! 강남으로〓최근 몇 년 사이 방송의 메카 여의도를 떠나 강남지역에 터전을 잡는 연기 학원이 늘고 있다. 400여개에 달하는 연예 관련 기획사나 매니지먼트사 중 250여개가 강남권에 밀집해 있는 것이 주요인.

7개월 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무실을 차린 스타게이트 연기아카데미의 김재엽 대표(37)는 “최근 강남 지역이 방송 문화의 주소재가 되고 있는데다 소규모 제작 회사들이 밀집해 있어 이같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기 학원들이 줄지어 강남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연기 학원인 여의도 MTM에서도 강남 분당 일대 거주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97년 삼성동에 강남분원을 열었다.

◇연기수업 44세 김봉란씨 "건강되찾고 소녀 된 느낌"

"대본 외우다 보니 '주부 치매' 말끔히"

“건강도 되찾고 사춘기 소녀적 감성도 살아났어요.”

김봉란씨(44·경기 안양시 평촌). 유치원 원장 출신의 결혼 20년차 주부. 남편은 ‘근엄한’ 신학대 교수. 세 아들의 어머니다. 지난 6개월간 연기 지도를 받으면서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맘껏 풀고 억눌러 온 ‘자아’를 되찾게 돼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며 환한 웃음을 짓는다.

“물을 가지러 갔는데도 갑자기 왜 갔는지 기억을 못할 정도로 ‘주부 치매’ 증세가 심했어요. 그런데 대본을 외우다 보니 그런 증세가 말끔히 가셨어요. 발성 연습 중 되풀이했던 복식호흡으로 만성 변비 증세까지 사라졌죠. 살도 8㎏이나 빠졌고요.”

김씨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탈출의 묘미가 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내성적이던 5세 오희지양 언어구사-표현력 '쑥쑥'

"엄마! 나 잘했지?"

내성적인 데다 소극적이기까지 했던 오희지양(5·경기 광명시 하안동·사진). 6개월 전만 해도 연기 수업 때마다 울면서 ‘엄마’만 찾던 희지가 이젠 대사 연기도 그럴 듯해졌고 대답도 곧잘 하게 됐다.

어머니 오정임씨(41)는 “언어 구사력이나 표현력이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하게 향상돼 놀랄 정도”라고 흐뭇해했다. 놀이터에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희지가 이제는 골목대장 노릇을 한다는 것. 유치원보다 연기 학원을 더 좋아하게 된 희지의 ‘요구’에 따라 이제는 연기 학원만 다니고 있다. 희지는 “카메라를 보고 활짝 웃어 보라”는 주문에 ‘사랑의 화살’을 쏘는 흉내를 내는 깜찍함을 보였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