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제조업체 박경진사장 "달력주문 '뚝' 불황 실감나요"

  • 입력 2000년 11월 14일 18시 43분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마음은 조금도 즐겁지 않네요.”

달력 전문 제조업체인 ‘진흥문화’의 박경진사장(60)은 내년 달력 주문 맞추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달력 주문량을 보면 다음해 경기가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 기업체나 금융기관별 달력 주문량을 보면 내년 경기가 심상치 않을 것 같군요.”

달력은 일단 한 번 걸면 1년 동안 두고 보는 데다 제작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 효율적인 광고 수단. 따라서 기업이 달력 제작 물량을 줄였다는 것은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는 게 박사장의 설명이다.

◇주문량 최고 40% 줄인 곳도

그는 76년 달력업계에 뛰어든 이래 달력 주문량에 따른 경기 전망이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말한다. 70년대 말 오일 쇼크를 앞두고 달력 주문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나 88올림픽을 1년 앞둔 87년말 주문량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내년도 달력의 경우 9월부터 주문을 받고 있지만 발주처당 주문량이 최고 40% 가까이 줄었습니다. 특히 경기동향에 관계없이 꾸준하게 달력을 대량 발주하던 대표적인 업종인 은행과 보험회사들마저 발주물량을 줄이고 있어요.”

그나마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인근 교회 목사들이 달력 주문을 몰아주고 있어 생산량은 올해치(630만부)에서 30만부 정도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들은 물량 부족으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84년말 기획한 서양화 달력을 53만부나 판매한 기록을 갖고 있다. 1만부가 손익 분기점이라는 달력업계 실정에서 대박을 터뜨렸던 것. “일본에서 찍은 사진이나 그림을 도용하던 시대에 자체적으로 화가에게 그림을 맡겨 제작한 달력이 성공을 거둔 것이죠.”

그의 시도는 우리나라 달력업계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달력에 사용되는 사진이나 그림에 대한 저작권 시비를 없앤 것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으로 달력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사진-그림 저작권시비 없애

현재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기업들이 연쇄부도에 처하면 그의 회사도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점. “달력을 받아가는 기업들이 대부분 대금으로 1∼6개월짜리 어음을 줍니다. 그런데 그 기업이 퇴출되면 어음은 십중팔구 휴지조각이 되고 자금난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기업이 부도날 경우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멀쩡한 달력을 제조원가 1000원(10만부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헐값인 ㎏당 50원의 폐지로 팔아야 하는 것. “달력에는 기업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많아 해당업체가 부도날 경우 달리 활용할 방도가 없어요. 이렇게 폐지로 팔아치우는 달력이 매년 10만부나 돼요. 올해에는 더 늘어날 것 같아 불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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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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