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빛'을 잃고 나니 밝아지는 '지혜의 눈'

  • 입력 2000년 9월 22일 18시 33분


하루 16시간 동안 눈은 매초 10억개의 메시지를 뇌에 보낸다. 눈이 일을 그만두면, 정신은 무엇과 대화할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는 내면의 눈에서 나오는 지혜와 예언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타임’지 편집장을 퇴임하고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 대사까지 그만둔 헨리 그룬왈드에게 ‘황반변성(黃斑變性)’이라는 손님이 닥쳤다. 망막 혈관이 파열돼 차츰 시력을 잃는 병이다. 평생 문자를 벗하고 산 그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돼가는 과정의 시작이었다.

예언의 선물은 받지 않았지만, 내면의 눈에서 나오는 지혜를 그는 책장에 풍성히 쏟아놓는다. ‘눈’이라는, 평소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던 벗에 대해 그는 명상한다. 고대 이집트에서 빛과 어둠의 상징을 화해하던 상징물. 게르만의 전설에서 증오와 복수, 악운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것. 눈.

과거의 회상으로 그는 침잠한다. 최초의 시각적 기억으로 각인된 방의 벽지 무늬. 고향 비엔나 스테판 성당의 검은 첨탑. 젊은 날 여행이 가져다 준 풍경의 매혹들.

저자는 ‘시각의 사형선고’를 받고 좋아하던 영화를 몇 번이나 거듭 보았다고 말한다. 책장을 넘기며 그런 안타까움에 동참하는 것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창 밖을 내다보자. 세상은 어찌 이리 찬란히 빛나는가.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 헨리 그룬왈드 지음/ 공경희 옮김/ 사과나무/ 160쪽 7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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