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자금성' 왜 예술무대로 각광받나?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33분


“쯔진청(紫禁城·자금성)은 베이징의 중심입니다. 그러니 중국의 중심이지요. 9999개의 방이 있습니다. 하늘에 1만개의 방이 있는 궁전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햇살이 톈안먼(天安門·천안문) 안뜰의 돌바닥을 하얗게 달구고 있는 8월 말의 한낮, 가이드의 영어설명에 파란 눈의 이방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곳이 그곳인가? 영화 오페라영상물을 통해 거실에서 먼저 만난 그 역사의 공간. 쯔진청이 영상과 공연의 ‘배경중심’으로

떠오른 매력은 무엇일까.

“베이징의 백성들이여, 법에 따라 포고하노라….”

1998년 9월, 쯔진청안 타이먀우(太廟)앞에서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거대한 막이 올랐다. 거장 주빈 메타가 지휘를 맡고 장이모우(張藝謨) 감독이 연출한 장장 9일간의 대장정이었다. 연 4만명의 관객이 관람하고 약 10억달러의 경제적 부수이익(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추산)을 창출한 이 거대이벤트는 쯔진청이 신비한 내력을 서방 음악팬들 앞에서 펼쳐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쯔진청은 명(明) 청(淸) 대를 이은 500년 2개 왕조의 황궁이다. ‘망한 북방왕조의 왕자가 베이징에 잠입, 공주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어 사랑과 권좌를 쟁취한다’는 투란도트 설화의 무대가 바로 쯔진청이다. 유명한 아리아 ‘잠들지 말라’가 울려퍼질 때 객석은 설화와 현실의 공간이 하나로 만나는 황홀경을 경험했다.

쯔진청이 베일을 열 때마다 전세계를 격동시키는 문화이벤트가 탄생한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이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중국 정부의 허가를 얻어 촬영한 영화 ‘마지막 황제’가 1987년 발표됐다. 청조(淸朝) 최후의 군주 푸이의 삶에 중국 현대사를 실어낸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등 9개부문을 휩쓸었다.

10년 뒤인 1997년, 쯔진청은 팝 음악팬들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스 출신의 뉴 에이지 음악인 ‘야니’의 공연이었다. 키보드와 오케스트라, 전기 바이올린으로 뒤덮인 역동감 넘치는 화음이 고대의 정적속에 싸였던 황궁의 정원 곳곳을 뒤흔들었다. 500만달러 (당시 약 45억원)을 넘는 비용이 투자됐지만 연주실황은 음반과 비디오로 제작돼 1년 뒤의 ‘투란도트’처럼 장기 베스트셀러로 계속 투자비를 회수하고 있다.

고립된 공간에서 세계적인 문화이벤트 장소로 탈바꿈한 쯔진청. 이 공간이 세계인을 끄는 매력은 역사성 신비성 예술성으로 요약된다.

▽역사성:2개 왕조가 흥망을 맛보았던 궁궐 안은 황제와 황후, 후궁과 환관들의 사랑과 배신, 질투와 음모의 내력으로 가득하다. 19세기 초 반란군의 화살이 문루의 현판에 그대로 박혀 있다. 징산궁위안(景山公園)에는 명의 마지막 황제가 목을 맨 나무가 전해 온다. 작은 청동항아리 하나도 역사의 기록을 간직하고 있다.

▽신비성:쯔진 (紫禁)이란 황제를 상징하는 색깔 ‘자(紫)’와 범인 (凡人)의 접근을 금했다는 ‘금(禁)’이 합쳐진 말. 황제의 거처로 들어가려면 톈안먼(天安門)부터 시작해 일직선으로 뻗은 네 개의 회랑을 거쳐야 한다. 구중(九重)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격리(隔離)의 공간설계다.

▽예술성:바오허덴 (保和殿) 뒤 아홉 마리 용을 새긴 대리석 보도, 전각들의 위풍당당함, 거북과 학 모양의 향로…. 카메라에 잡히는 정경 하나하나가 중국의 자존심과 명예를 간직한 예술작품이다.

올해 쯔진청은 액션영화의 무대로서도 세계에 다가가게 됐다. 8월 개봉된 영화 ‘샹하이 눈’, 와호장룡(臥虎藏龍) 등 두 개의 작품에서 좌충우돌의 무공이 쯔진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 그러나 대부분은 컴퓨터그래픽과 세트장을 활용했다.

<베이징〓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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