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화가들은 왜 정물화에 몸 달았을까?

입력 2000-09-01 19:58수정 2009-09-22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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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구근 한 뿌리가 집 한 채, 배 한 척의 값으로 팔리던 시대가 있었다. 아니, 아무리 큰 돈을 주고도 못 사던 시대가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왜 희귀한 꽃이나 조개껍데기 따위를 모으는데 그토록 몸달아 했을까? 그렇게 본다면 꽃병 그림 한 점도 예사롭게 지나치기 어렵다.

정물화는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경이롭고 까다로운 주제다.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인 호두나 개암열매처럼 그림에 숨은 뜻을 좀처럼 열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정물화의 은밀한 빗장을 벗겨서 황금시대 네덜란드 화가들이 꿈꾸었던 예술적 우주를 펼쳐 보인다.

그들의 우주는 정성껏 손질한 앞뜨락에서 시작해서, 과일과 포도주가 있는 부엌을 거쳐, 갓 잡아온 사냥감을 던져둔 정원 테라스, 그리고 음악과 책이 영혼을 살찌우는 거실을 지난 다음, 골목 어귀 바깥 어물시장과 청과시장 그리고 푸줏간까지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유도시의 좁아터진 뒷골목을 골고루 누비면서 쓴 책이다. 교차무역으로 엄청난 재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에라스무스의 따끔한 가르침에 옷깃을 여미기도 했던 풍요로운 상실의 시대에 흙투성이 현실과 교회의 고귀한 가르침 사이를 부단히 고뇌하던 예술적 영혼들에 대해서 기록한 증언이다.

그런데 화가들이 성서나 신화같이 고상하고 웅장한 주제를 제쳐두고 따분한 일과의 식탁이나 떠들썩한 시장 거리에 눈길을 돌린 건 도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 일상의 풍경 한 토막을 붙드는 것이 정물그림이라면, 상서로운 일상에서 비상한 기적을 응시하는 건 정물화가의 몫이었다. 이 세상은 창조주의 뜻이 담긴 거울이라고 보고, 화가도 자신의 거울 안에 신성의 의지를 비추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밀스런 미술의 약어로 가득 찬 그들의 엠블럼 책은 창조주가 펴낸 ‘이 세상의 책’에 무리 없이 필적한다. 예컨대 눈뜬 소경에 대한 성서의 비유는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한 감관(感官)의 가치로 바꾸어 읽어도 좋다.

르네상스 시대도 그랬지만 고대에도 정물화가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생명력 넘치는 움직임이 결핍된 ‘하찮은 허섭쓰레기’ 그림이라고 홀대받기 일쑤였다. 그러나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못난이 구근을 가꾸어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다운 정물화를 피워냈다. 또 예술을 푸줏간 쇠고리에 매달고 예리한 붓을 놀려서 솜씨 좋게 도축했다. 모름지기 세상이라는 극장 무대에서 한 호흡 살아가는 인간의 물거품 같은 삶을 미술의 밝은 거울에 비추었다. 글쓴이는 그들의 호흡을 거두어 영구히 시들지 않는 정물 한 소쿠리를 소담하게 내었다.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최정은 지음/ 한길아트 펴냄/ 380쪽 2만2000원▼

노성두(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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