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칼럼]'美(미)'/섹시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08분


▼'美(미)' / 낸시 에트코프 지음 / 살림▼

아름다움은 제 눈에 안경이라는 속담이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말을 신봉하는 페미니스트와 사회과학자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화장품과 패션 업계가 장삿속으로 만들어낸 허구이며, 여성을 현재의 사회적 위치에 고착시키기 위해 가부장적 사회가 구축한 신화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여성미란 사회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각종 미인 선발대회는 여성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보다 여성의 성(性)을 상품화하는 행사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얼마전 페미니스트 잡지에서 키 155㎝ 이하이거나 77 사이즈 이상의 옷을 입는 여자들을 모아놓고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여성미가 사회적 구성물임을 강조하기 위한 몸짓이다.

여성미를 단순히 문화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득세하는 세태에서, 이러한 주장을 성공적으로 반박한 책이 때마침 번역 출간됐다. 하버드 의대교수인 저자는 진화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특유의 이론을 전개한다.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은 인류의 조상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자연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언어에서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진화론으로 풀이한다. 국내에도 몇몇 이론가의 저술이 소개된 바 있다. ‘언어 본능’(스티븐 핑거), ‘욕망의 진화’(데이빗 부스),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랜돌프 네스)에 이어 여성의 성적 매력을 논의한 이 책이 소개되어 진화심리학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남자가 젊고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까닭은 여성미를 다산성(多産性)의 척도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종족 보존 능력이 뛰어나므로 짝짓기에서 유리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여성의 아름다움은 생존경쟁에서 여성 자신을 위해 진화됐으며 결코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성물이 아니다.

여류학자인 저자 에트코프 교수는 여성미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연구 성과를 이 책에서 집대성했다. 그리고 여성미를 평가하는 기준이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이며 인간의 타고난 본능임을 입증하는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가령 생후 3개월된 아기들도 성인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본다고 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은 여성미의 본질보다는 아룸다움을 평가하는 인간의 본능을 다루고 있다. 경쾌하고 재치있는 문체를 따라 단숨에 일독(一讀)하고 나면 아마도 여성미를 새삼스럽게 이해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책의 원제는 Survival of the prettiest. 이기문 옮김. 349쪽, 9000원.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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