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폐업 사흘째]의대교수 사퇴-비상진료 한계

  • 입력 2000년 6월 22일 19시 27분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의약분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23일 정오 이후 응급실을 떠나기로 공식 결정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의료대란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중앙병원 등 대형종합병원들도 의대교수협의회의 방침에 동조, 진료를 거부하거나 제한키로 해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의 전면폐업 사흘째인 22일 전국의 종합병원과 국공립병원 등에는 진료중단 사태를 우려한 환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대부분 초만원을 이뤘으며 진료거부 등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의사를 폭행하는 등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 결정▼

36개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의대교수협의회는 22일 오후 8시 서울대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3일 정오를 기해 전국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소속 교수들이 철수키로 했다”고 공식 밝혔다.

의대교수협은 이날 오후 5시부터 회장단 회의를 가진 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교수협이 22일까지 정부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거나 의대생 및 의사협회 회원에게 법적 제재 등 불이익이 가해질 때 교수들이 사퇴키로 한 18일의 결의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현직 교수협회장은 “입원 환자나 중환자실 환자는 의사로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인 자격이나 자원봉사 등 어떤 형태로든 돌볼 것”이라며 “하지만 23일 정오 이후 응급실로 들어오는 환자는 돌볼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회장은 “23일 오전 9시 대학별로 의대 교수 총회를 열 것이며 앞으로는 대한의협의 결정과 방침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연세대 의대 교수 395명은 22일 오전 긴급회의를 갖고 23일부로 전원 사퇴키로 결정했다. 교수들은 그러나 외래 환자는 받지 않되 응급실 중환자실 입원실 분만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계속 운영키로 했다.성균관대 부속 강북삼성병원 교수와 전임의 108명은 22일 오후 전원 사표를 제출, 그동안 부분적으로 운영하던 외래진료를 23일부터 전면 중단키로 했다.

강남성모병원 교수 150여명도 응급실과 입원실 환자들에 대해서는 평상복 차림으로 계속 진료하되 외래 진료는 거부키로 결정했다.삼성서울병원과 서울중앙병원 전문의와 교수들은 의대교수협의 결정에 동조,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사표를 내되 자원봉사 등의 형식으로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입원실 등의 환자는 계속 진료하기로 했다.그러나 국립의료원 경찰병원 보훈병원 등 국공립병원과 일반 종합병원, 보건소 등은 23일 이후에도 지금과 같이 제한적이나마 병원 운영을 계속한다.

▼사건 사고▼

▽음독환자 병원 전전하다 숨져〓21일 새벽 6시반경 부산 동래구 온천동 P여관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한 김모씨(32·경남 통영시)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119에 신고했으나 병원을 전전하느라 시간을 허비, 이날 오후 6시10분경 숨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김씨를 인근 광혜병원으로 옮겼으나 전공의 없이 여의사 1명만 당직인 상태에서 김씨가 완강히 위세척을 거부해 부산시립의료원으로 옮겼고 여기서도 “응급실에 환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구급대가 다시 국군부산병원에 연락했으나 “치료할 상황이 아니다”는 말에 오전 8시반경 겨우 부산대병원으로 옮겨 위세척 등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결국 숨진 것.

▽“어차피 치료도 못받을텐데…” 자살기도〓심근경색으로 고생하던 신모씨(60·전남 영암군 시종면)가 의료계 집단폐업으로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다 22일 오전 6시15분경 자살을 기도해 중태에 빠졌다.

이날 부인 강모씨(53)는 신씨가 흉기로 자신의 복부를 찌른 뒤 신음중인 것을 발견, 전남대병원으로 옮겨 치료중이다.

부인 강씨는 “20일 남편이 심한 가슴 통증으로 보건소에서 진찰을 받고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은 뒤 의료계 집단폐업으로 치료받지 못할 것을 걱정해 왔다”고 말했다.

▽국가 의협 상대 손해배상소송〓20일 여러 병원의 진료거부로 뒤늦게 국립의료원으로 이송돼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급성신부전증 환자 정동철씨(39·서울 강북구 미아동)가 22일 오후 2시경 끝내 숨졌다.

정씨의 부인 장모씨(40)는 “남편이 제때 진료를 받기만 했어도 숨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병원이 진료를 거부하는 사태를 초래한 국가와 의사협회를 상대로 소송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환자 가족의 의사 폭행〓22일 새벽 3시경 대구 북구 태전동 D병원 응급실에서 전모씨(31)는 감기 증상을 보이는 아들(2)의 진료를 빨리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술김에 당직의사 오모씨(32)와 방사선과 기사 허모씨(32)를 때려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의자 등 집기를 파손시켰다.

▽시민의 ‘폐업의원’ 고발〓교통사고로 1일부터 서울 동작구 흑석동 정인설정형외과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 왔던 안경일씨(27)는 21일 “병원측이 19일 폐업을 이유로 강제 퇴원시켜 진료를 거부했다”며 병원장 정인설씨(46)를 서울 노량진경찰서에 고소했다.

충남 천안시 쌍용동의 김모씨(38)도 22일 폐업신고를 내고 환자진료를 거부중인 천안 모소아과의원 등 동네의원 10곳의 원장을 의료법 및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고발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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