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도로안전진단

  • 입력 2000년 6월 12일 19시 37분


영국 제2의 도시 버밍햄 시 당국은 최근 깁 히드 지역 500m 길이의 왕복 2차로인 ‘벤슨 로드’에 세 곳의 ‘병목’을 설치했다. 왕복 2차로를 1차로로 줄이고 오가는 차량이 번갈아 지나도록 함으로써 속도를 줄일 수 있게 한 것. 다만 한 방향에 우선권을 주는 표지판을 설치, 양 방향에서 차량이 동시에 병목에 진입하는 경우에 대비했다. 이 곳의 도로구조를 바꾼 것은 인근에 여중학교가 있고 주택가를 지나는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소호 로드와 불튼 로드를 최단거리로 가로 질러 가는 차량통행이 늘면서 보행자 사고가 늘었기 때문이다.

버밍햄시 스노우 힐 지역 아스톤 오거리는 교차로로 진입하는 두 개의 도로를 우회로를 만들어 다른 도로와 연결시켜 아스톤 오거리를 삼거리로 만들었다. 또 삼거리 중앙에는 원형 교통섬(라운드 어바우트)를 설치했다. 교차로로 이어지는 도로가 많을수록 교통혼잡이 가중되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접촉사고도 늘어난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는 영국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199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도로 안전 진단 제도(Road Safety Audit)’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도로개조 작업의 몇 가지 사례들이다. 우리 나라도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한 검토 작업에 들어가 있다.

도로 안전 진단이란 도로건설 단계부터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 없애고, 도로가 건설된 후에도 도로 구조나 안전 시설이 사고 방지에 적정한가를 평가해 도로를 개조하는 것. 영국은 모든 고속도로와 간선도로에 이 제도를 도입했으며, 지자체가 건설 관리하는 도로에도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영국 버크셔 소재 교통연구소(TRL)의 폴 포먼 연구원은 도로 안전 진단 제도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사람의 몸에 병이 나는 것과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 운전자나 보행자가 부상하는 것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비용도 적게 들고 효과도 큽니다. 따라서 건강진단을 받듯이 도로도 ‘도로안전 진단과 이에 따른 처방’이 필요하지요.”

TRL이 런던 버밍행 맨체스터 글래스고우 등 주요 대도시의 교통사고 발생 요인을 분석한 결과 도로환경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28%였다. <도표>

영국 대부분 도시의 도로개조에 필요한 진단을 해주는 버밍햄 소재 ‘사고 방지를 위한 로열 소사이어티(RoSPA)’. 교통사고가 전적으로 운전자의 과실이나 부주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도로 구조나 안전시설물의 변경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지를 분석해 처방하는 곳이다. RoSPA의 케빈 클린턴 연구원은 “도로 환경의 요인이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에는 해당 도로를 개조하는 것은 물론 유사한 도로에 대해서도 ‘사전 진단 및 치료 방안’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RoSPA는 도로사정에 따라 교차로 개선, 일방통행로 확대, 라운드 어바우트나 병목 설치 등 도로구조를 변경하거나 과속방지턱, 안전표지판, 교행표지판, 무단횡단 방지 가드레일 등 안전시설을 설치한다는 것 등을 처방으로 내놓는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RoSPA의 처방에 따라 도로를 안전 위주로 개조한 곳이 500여곳에 이른다고 클린턴 연구원은 말했다.

<버밍햄〓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자문위원단(가나다순)〓내남정(손해보험협회 이사)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광희(경찰청 교통심의관)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지광식(건설교통부 수송심의관)

▽특별취재팀〓윤정국(이슈부 메트로팀·팀장) 이인철( 〃 교육팀) 송상근( 〃 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윤상호(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사회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해동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새천년 운전예절/솔직한 과실인정 아쉬워▼

나는 1985년에 운전면허를 땄다. 운전경력은 15년 정도.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다행히 한 번도 내가 사고를 내본 적은 없다. 운전을 하다보면 가벼운 접촉사고는 늘 있게 마련. 그러나 사고를 낸 뒤 운전자들의 대응 자세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많다.

3년 전 쯤인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차를 몰다가 우회전을 하게 됐다. 앞서 우회전한 차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나도 서게 됐다. 그런데 뒤따라 오던 차가 그만 내 차를 들이받았다. 차에서 내려 상태를 확인해보니 뒤범퍼가 약간 밀려들어가 있었지만 크게 파손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뒤차에서 내린 20대 후반의 남자는 나를 보더니 대뜸 “왜 운전을 그따위로 하느냐. 갑자기 서면 어떡하란 말이냐”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 생각해봐라. 이게 내가 잘못한거냐”고 응수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사실 운전면허 따고 운전 시작한지 한 달 밖에 안됐다. 내가 잘못한거냐”고 목소리를 낮춰가며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어디서 얘기를 들은 것이리라. 결국 그 날 사고는 원만히 처리됐지만 사고를 합리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려고 하는 행동에는 어이가 없었다. 또 얼마 전에는 후진하던 차량이 내 차 옆문을 들이받아 옆문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깊게 패인 적이 있었다. 상대 차량의 과실이 분명했기 때문에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지는 않았지만 상대 차량 운전자가 “자기가 잘 아는 곳에 가면 찌그러진 문을 펴는데 2만원이면 된다”며 생떼를 쓰는 바람에 한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물론 조그만 접촉사고를 빌미로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다. 제도적으로 사고 처리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실수로 접촉사고가 난 경우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러주는 것도 운전예절의 하나일 것이다.

김수용<개그맨>

▼전문가 기고 "안전시설물 투자 사고예방 지름길"▼

교통사고로 인한 직 간접적 손실은 엄청나다. 인명피해와 차량 도로구조물의 파손은 물론 노동능력의 상실, 정신적 고통 등도 이루 말할 수 없다. 1998년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는 10조 8000억원으로 국민총생산(GNP) 대비 2.44%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매년 약 25만건. 교통사고 1건 당 평균 손실은 4000만원, 사망 사고의 경우 3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독일 네델란드 덴만크 등 유럽에서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도로 구조나 운영 체계를 바꾸는 ‘교통 정온화(靜穩化·tarffic calming)’ 기법이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차로를 줄이고 의도적으로 도로를 곡선으로 하는 등 수 백 가지의 기상천외한 기법들이 개발돼 있다. 도로표지판도 훨씬 다양하다. 도로 폭을 넓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 구간의 도로를 ‘정온화’하는데 평균 2000만원 정도의 비용 밖에 들지 않는다. 이는 교통사고 1건당 발생하는 피해액의 50%에 불과하다. 교통사고 만큼 사고 예방에 투입하는 비용의 효율성이 높은 것도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국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한 해에 3500명 가량으로 인구 규모를 감안해도 우리 나라의 약 30% 수준. 영국은 앞으로 10년 내에 이를 2000명 이하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특히 운전자 계몽은 물론 교통 정온화 기법 등 도로구조의 개선이나 안전 시설물에 대한 투자로 교통사고 줄이기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교통안전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에 과속이나 음주운전 등 운전자의 과실에 의한 사고에 대해 정부의 처벌이 가혹해도 국민들은 이를 납득한다.

권영인<교통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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