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오늘의 작가상 수상 이만교 '결혼은, 미친 짓이다'

  • 입력 2000년 5월 26일 20시 08분


맞선 본 남녀. 찻집, 극장, 전통주점, 의례적인 코스를 거친 뒤. “전철 끊겼죠?”(여) “총알 택시보단 여관비가 쌀 거예요.”(남)“곯아떨어질 게 뻔하니까, 택시를 타나 여관으로 가나 마찬가지일 거 같네요.”(여). 일순간 ‘신파극’이 ‘포르노’로 돌변한다.

제24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이만교씨(33)의 장편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민음사)는 몰개성화 패션화된 결혼 제도를 경쾌하게 조롱한다.

첫 만남에서 여관으로 직행한 여자는 정기적인 섹스 파트너인 ‘나’와 다른 4명의 남자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따진다. 그녀는 돈 많은 의사와 결혼한 뒤에도 ‘나’의 연인으로 ‘겹치기 출연’한다. 두 사람 사이엔 죄책감 대신에 공허함만 짙어간다.

작가는 결혼에서 낭만과 신성함을 찾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본다. 관념적인 결혼의 이데아란 ‘연속극 아니면 국산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속물화된 사회에서 결혼이란 ‘물질적 거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같은 결혼의 생태학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내용 보다 스타일이다. 무거운 주제를 ‘제대로’ 가볍게 요리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특히 핑퐁식으로 치고받는 대사는 소설에 독특한 돋을새김을 이룬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영상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소설보다 대본 같은 느낌이다. 익숙한 장면이 많고 커트가 길다는 점에서 영화 보다 드라마에 가깝다.

작가는 이같은 작법을 ‘소설적 시나리오’라고 불렀다. “상황을 묘사하는 전지적 설명은 최소한 줄이고 대사만으로 빠르게 전개하려 했다. 영상세대를 위한 새로운 글쓰기 실험이다.” 사실 그는 사촌매형인 장현수 감독(‘게임의 법칙’)을 도와 시나리오 작업을 거들었던 전력도 있다.

일단 단숨에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 그의 전략은 어느 정도 어필한 듯하다. 발간 몇 일만에 2쇄를 찍을 만큼 독자 반응이 좋다. 스스로도 고백하듯, 앞으로 ‘웃음의 깊이’를 획득할 수 있다면 능한 재담꾼으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가질 만하다.

이씨는 첫 장편소설을 화려하게 입성시킴으로써 큰 짐을 덜었다고 했다. “IMF관리체제 시절, 오디오가 고장 나고 세면대가 막혀도 손을 쓸수 없었던 궁핍한 생활이 책 대신 펜을 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설의 분위기와는 달리 4년간 결혼생활을 합쳐서 12년간 한 여자만 바라본 순진파다. 인하대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현재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후속작을 쓰고 있다.

92년 시인으로 데뷔한 뒤 틈틈이 쓴 시도 족히 한 권 분량이 넘는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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