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課外도 맞춤시대]알선업체에 온갖 조건 제시

  • 입력 2000년 5월 10일 19시 10분


“새로 오실 과외 선생님은 키 180㎝에 몸무게 75㎏이 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덩치가 좀 크거든요. 또 우리 애가 소심한 편이니 다그치는 성격보다는 자상한 성격의 선생님이 좋을 것 같아요.”

과외의 전면허용과 인터넷을 통해 과외를 알선해 주는 업자가 늘어나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과외교사의 유형을 직접 고르는 ‘맞춤형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과외를 받는 학생의 수는 한정된 반면 과외 전면허용으로 교사를 맡겠다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과거 명문대 대학생을 과외교사로 어렵게 ‘모시고도’ 성격 차이 등의 이유로 효과를 보지 못해 속병을 앓았던 부모들은 요즘 찾아보기 어렵다. 가르치겠다는 사람이 넘치니 배우겠다는 쪽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한마디로 ‘수요자 중심의 과외시장’ ‘맞춤 과외교사 시대’가 열린 셈이다.

최근 중학교 3학년 아들의 과외교사를 구하고 있는 주부 최모씨(43·서울 강남구 역삼동)는 인터넷 과외알선업체에 의뢰하면서 “이왕이면 날씬한 선생님을 구해달라”며 ‘몸매’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비만에 가까운 체형의 아들에게 자극을 줘 다이어트를 시키고 싶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지난해만 해도 명문대 대학생이면 무조건 OK였지만 요즘 교사가 넘친다는 소리를 듣고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해 보기로 했다”며 “주위에서 ‘이제는 학부모가 좀 퉁겨도 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 딸의 과외교사를 구하고 있는 주부 한모씨(40·서울 광진구 구의동)는 과외알선업체에 자신의 집안과 고향이 같고 컴퓨터 실력이 출중한 교사를 요구했다. 알선업체 쪽에서 조건에 맞는 후보를 제시하자 한씨는 다시 이색적인 요구를 추가했다. 교사 후보의 생년월일과 출생시간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한씨는 “딸이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를 잘 아는 선생님이라야 대화가 잘 될 것 같았다”며 “생년월일은 궁합을 보려고 요구한 것으로 아무래도 궁합이 잘 맞아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과외 알선업자들은 이 같은 경향이 과외허용 이후 부쩍 심해졌다고 보고 있다. 한 과외 알선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조건이라고 해봐야 출신대학 전공 성별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요즘 그 정도는 기본 중에 기본일 뿐”이라며 “정서가 일치해야 한다며 같은 종교와 같은 고향 사람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녀가 원한다며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를 원하기도 하는 등 추가조건이 평균 2, 3가지나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과외 알선업체 진솔교육정보에 따르면 현재 이 회사를 통해 과외를 받고 있는 학생은 모두 1만2300여명. 고등학생이 52.3%로 가장 많고 중학생(36.4%) 초등학생(11.3%) 순이다. 또 과외비는 21만∼30만원이 53.5%로 가장 많았고 31만원 이상은 8.9%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의 강민(姜敏·30)기획실장은 “과외시장이 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학생과 학부모가 ‘고객’으로서의 요구를 당당히 제시하고 있다”며 “교사 지원자도 스스로를 학생의 요구에 맞게 개발하지 못한다면 새로운 과외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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