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로버트 길모어著 '물리학 환상여행'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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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환상여행' 로버트 길모어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347쪽/ 1만2000원▼

과학, 특히 그 기초가 되는 물리학은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그렇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그렇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그같은 물리학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저 결론만 접하면서 그 결론을 이용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과학의 시대에 오히려 과학으로부터 소외당하곤 한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 물리학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려왔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을 패러디한 소설 형식을 통해 물리학의 세계를 여행하도록 한다.

저자는 영국 브리스톨대의 입자물리학교수로, 이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한 ‘양자나라의 앨리스’를 펴낸 바 있다.

주인공 스크루지는 하룻밤 사이에 엔트로피 여왕 유령, 시간 할아버지 유령, 광대 유령을 만나 우주 여행을 하면서 물리 이론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엔트로피 여왕은 물리학의 기본 이론인 열역학 에너지 엔트로피의 원리와 상호간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시간 할아버지는 빛 시간 운동 카오스 등 변화와 생성에 관한 물리학 이론을 들려준다.

책의 첫 부분.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유령)

“돈이요.”(스크루지)

“뭐, 돈이라고.”(유령)

욕심쟁이 스크루지에겐 역시 돈이 최고다. 그러나 유령은 스크루지와 몇차례 승강이를 한 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스크루지의 다소 엉뚱한 질문과 승강이는 독자들이 편안하게 물리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유도장치. 일반인의 수준으로 맞추려는 저자의 의도다.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대목을 보자. 스크루지는 “냉장고를 열어놓으면 냉장고의 차가운 안쪽에서 방의 더운 쪽으로 열을 뿜어내는 것 아니냐”면서 유령에게 반론을 펼친다. 기발한 듯 엉뚱하다. 그 엉뚱함 속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레 물리학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철학적인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유령이 스크루지에게 한 말 중 이런 게 있다. “열 죽음의 최종 평형은 아마 희망의 종말이 될지도 몰라. ”

열 죽음, 최종 평형, 희망의 종말? 온도가 다른 두 물체가 접촉해 있으면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해 결국엔 동일한 온도가 된다. 이것이 열 죽음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희망의 종말’로 보았다.

저자에게 있어 열의 죽음이나 평형은 삶의 멈춤, 역동성의 상실이나 마찬가지다. 삶은 다이내믹한 꿈틀거림 같은 것이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메타포인 셈이다. 물리학 속에서 어떤 삶의 철학까지도 읽어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의 의도나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소설의 형식이나 스크루지라는 인물이 이 책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진희 옮김. 347쪽, 1만2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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