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저서출판 봇물…대부분 급조 주민에 무료배포

  • 입력 2000년 2월 8일 20시 19분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비후보들의 각종 저서출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작가’들의 저서는 선거를 앞두고 급조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편법 선거홍보물’로 배포되면서 오히려 정치불신을 가중시키고 출판문화를 흐린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와 올해 책을 낸 여야 중진과 현역의원은 권노갑 김중권 김옥두 김덕룡 강성재씨 등 100여명. 이번 선거에 나설 정치신인까지 더하면 총선 예비후보들의 책은 최소한 500여권에 이른다는 게 출판계의 분석.

이처럼 예비후보들이 저서출판을 선호하는 이유는 선거운동 기간 전에도 출판기념회 및 책광고 등을 통해 자신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신인들에게는 저서출판이 가장 큰 홍보수단이다. 기업인 출신으로 총선출마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수필집을 낸 K씨는 “현실적으로 주민들에게 얼굴 알릴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저서는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홍보자료”라고 말했다.

출판은 대개 자비출판 형식으로 이뤄지며 3000∼5000부를 찍을 때 드는 비용이 2000만∼3000만원. 보좌관이나 대필작가가 동원되는 경우가 많으며 작가등급에 따라 200만∼1000만원 상당의 ‘대필료’는 별개다.

하지만 이렇게 출판된 저서들이 서점 진열대에서 일반독자들에게 제값 받고 팔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K문고의 판매담당자는 “이른바 ‘상품가치’가 있는 몇명을 제외하고는 1주일에 1, 2부 나가기도 힘든 책들이어서 자기 지역구 내의 서점에 무료배포하거나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물량이 90%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비후보 입장에서는 선거운동기간 전에 책광고를 통한 ‘홍보’가 가능하며 또 출판기념회를 통해 사실상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후원금품 모집도 할 수 있어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물론 선거법상 무료로 책을 나눠주거나 출판기념회에서 저자를 선전하는 발언은 단속대상. 그러나 각 지역 선관위의 단속은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이같은 ‘편법’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또 책의 내용도 대부분 급조된 것이어서 조잡하거나 자화자찬 일색인 경우가 많아 독자들로부터 외면받고 정치불신을 조장한다는 지적이다.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과거에 몇번 책을 내봤지만 이제는 독자들도 정치인의 저서가 ‘선거용’이라는 것을 알고 외면하기 때문에 이번부터는 안 내기로 했다”며 이같은 출판붐에 대해 “한마디로 낯 간지럽고 속보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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