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직장인 'DDR와의 전쟁'…근무후 맹연습 진풍경

  • 입력 2000년 2월 7일 19시 48분


‘오른발 왼발, 위로 아래로….’

자정이 가까운 시간 서울 종로의 한 전자오락실. 컴퓨터 춤오락기인 ‘DDR’ 위에서 회사원 김모씨(31)가 구슬땀을 흘리며 최신 댄스곡에 맞춰 서투른 몸짓으로 발판을 밟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시작 1시간이 지났건만 첫 단계도 넘기지 못한 상태. “1주일째 맹연습중인데 몸이 영 안따라주네요. 마음은 ‘H.O.T.’인데….” 며칠 전 신입사원들과 함께 게임을 하다 자빠지는 바람에 망신당한 ‘쓰라린’ 기억을 떠올린 김대리는 다시 500원짜리 동전을 투입구에 넣었다.

같은 시간 인근 10여개의 오락실에서도 10,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틈에서 어설픈 자세로 ‘DDR’의 국산버전 ‘PUMP’게임에 열중하는 30대 직장인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최근 신세대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댄스게임에 이처럼 ‘386’세대 직장인들이 몰두하는 것은 다름 아닌 ‘DDR 왕따’를 면하기 위한 ‘고육지책’. 회식 등 각종 모임의 뒤풀이가 노래방이나 당구장이던 과거에 비해 요즘은 후배들의 성화로 댄스게임하러 오락실을 찾는 경우가 늘면서 30대 직장인들이 ‘DDR 정복’에 나선 것이다.

이런 실태를 반영하듯 점심시간과 밤늦은 시간 회사 인근 오락실에는 능수능란하게 게임을 즐기는 신세대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흘깃거리며 ‘쿵쾅쿵쾅’ 오락기 발판을 밟는 30대 직장인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H이동통신에 근무하는 최모씨(31)는 지난달부터 뜻을 같이한 5명의 동료와 함께 매주 한 차례씩 남동생의 친구를 강사로 초빙, 시내 오락실에서 강의를 받는 경우. 최씨는 “신세대 앞에서 창피당하기 싫은 동료들은 아예 2만원짜리 게임 소프트웨어를 구입, 집에서 연습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오락실을 운영하는 김모씨(47)는 “방학을 맞아 10대들이 북적대는 낮시간을 피해 밤늦게 오락실을 찾아 연습에 몰두하는 직장인들이 최근 부쩍 늘었다”며 “일부는 연습이 끝날 때까지 가게문을 닫지 말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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