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선거/독자 체험기 받습니다]

  • 입력 1999년 12월 31일 19시 05분


《동아일보는 ‘4·13’ 총선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으로부터 ‘나의 선거 체험기’를 받아 게재합니다. 선거문화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얘기라면 어떤 소재도 좋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들은 200자 원고지 4장 정도 분량의 원고를 연락처(주소 및 전화번호), 표정이 있는 인물 사진과 함께 서울 세종로 139 동아일보사 편집국 정치부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것은 전화 02―2020―1210(팩스 02―2020―1219, E메일 reporter@donga.com)로 문의 바랍니다.》

96년 총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경기도의 한 서민 동네 단독 주택가에 살았고 대부분의 서민이 그렇듯이 이웃들과 오순도순 지냈다. 특히 옆집의 통장 아줌마 A와 서로 부엌의 숟가락 수까지 알 정도로 정말 허물없이 지냈다.

나보다 나이가 여덟살 많았던 A는 당시 그 동네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K후보의 선거운동에 열중이었는데 총선을 석달쯤 앞둔 어느 날 나에게 특별한 부탁을 해왔다.

자신은 이미 선거운동원으로 소문이 났기 때문에 그러는데 내가 나서 K후보 지지자가 아닌 사람들로 10명 정도만모아달라는것이었다. “그렇게만 해주면 5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나는 솔직히 귀가 솔깃했다. 더구나 K후보 지지를 내색하지도 않겠다는 게 아닌가.

나는 “문제될 것이 무엇이겠는가”하는 대수롭지 않은 생각으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또래 아줌마들을 집으로 불러모았다. 좀 통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다과회가 생겼으니 일단 먹고 보자”고 초대이유를 설명했고 깐깐해 보이는 이에게는 “그냥 차나 한잔 마시자”는 구실을 댔다.그러나 사람들이 다 모이자 A는 선거운동 내색을 않겠다던 당초 약속과 달리 출마자들의 면면을 비교해가며 슬쩍슬쩍 K후보를 추켜세웠다. 급기야 모두가 모임의 취지를 눈치채고 말았다.

일부는 먹은 값을 하겠다는 듯 “맞아” “그래”라며 맞장구를 쳤지만, 일부는 “먹은 죄가 있어 말은 않겠지만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항의하는 표정이 역력했다.순간 “친분을 정치에 판 결과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말로만 듣던 불법 타락 선거에 나도 한 주역으로 끼어들고 있었다니….

장연희<주부·34세·서울 양천구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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