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화제]작가 은희경 '그건 꿈이었을까' 펴내

  • 입력 1999년 12월 3일 19시 15분


“어떨 때는, 꿈이 인생의 다른 버젼(Version)같아요. 여러가지의 꿈을 꾼다는 것은 여러 겹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불혹을 맞은 작가, 꿈에 혹(惑)하다. 작가 은희경(40)의 새 장편소설 제목은 ‘그것은 꿈이었을까’(현대문학사)다.

그 꿈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왜? 여지껏 그의 주인공들은 위반, 전복, 반란의 모습을 투구나 갑옷처럼 걸치고 있었으므로.

꿈을 꾸고 있는 자가 반란할 수 있을까.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을 지우고 있는 ‘새의 선물’의 어린 진희가,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외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어른 진희가 가진 눈은 또랑또랑했다. 불신과 위악의 포즈를 하고 있는 그들의 눈이 흐릿한 꿈 속에 잠길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작품에서만은, 그 주인공들을 잊어도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설명할 수 없는 인생의 부분들, 논리적으로 조각맞출 수 없는 이야기를 위해 꿈을 빌려왔다는 설명.

가족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사는 인턴 준. 친한 친구 진과 함께 시험준비를 위해 고시원 ‘레인 캐슬’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꿈결인 양 한 소녀를 만나고, 소녀는 안개처럼 사라진다. 선배의 병원에서 안과 수련의로 생활하던 그 앞에 소녀가 홀연 나타난다, 또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소녀는 중반 이후 실종되고 작품 말미에 가서야 희미한 영상으로 나타나는가. 왜 진은 갑자기 죽어버리는가.

“꿈 이야기라지만, 펼쳐놓은 이야기를 너무 오무리지 않은채 작품의 문을 닫은 것 아닌가” 기자는 그렇게 딴죽을 걸었다.

“모호하다구요? 의식적이죠. 앞선 작품들에서는 지나치게 선명한 플롯을 추구했지만, 이번엔 오히려 실감이 안나게 하려고 긴장했어요.”

작품에 몽환적인 표정을 더 짙게 드리우는 것은 존 레논의 앨범 ‘러버 소울’에 등장하는 14곡의 노래들. 각 장의 서두에 문패처럼 붙박혀 안개와 같은 기운을 뿜어낸다.

“노래와 줄거리는 구체적 연관이 없어요. 분위기 연출을 위한 거니까. 불성실한가요? 스스로의 힘으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해 다른 장르의 텍스트를 빌어온다는 것이.”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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