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회기역부역장]여대생 투신자살 수습하다 참변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9시 37분


“생전에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더니… 좋은 사람은 먼저 가나봅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지하철 1호선 회기역 김상훈(金相勳·31·서울 노원구 상계동)부역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동료들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씨가 변을 당한 것은 19일 밤. “사람이 뛰어들었다”는 의정부발 수원행 599호 전동차 기관사의 다급한 무전 연락을 받은 김씨는 6명의 직원 중 가장 먼저 선로로 뛰어내려갔다.

이날 오후 10시47분경 술에 취해 플랫폼에서 전철을 기다리던 S대 회계학과 4학년 여미영(呂美英·22·여·경기 광명시 철산동)씨가 역구내로 진입하던 이 전동차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김씨는 시신을 수습하고 단 1분이라도 빨리 전동차의 운행을 재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다른 전동차에 출발신호를 보내려고 선로 위를 뛰었다.

그러나 반대편 선로로 진입하던 청량리발 강릉행 319호 무궁화 열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김씨는 열차 옆부분에 부딪혀 쓰러졌으며 동료들에 의해 경희의료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여만에 숨졌다.

회기역은 하루 유동인구가 6만명에 달하는 손꼽히는 ‘혼잡역’. 1분만 열차가 늦어도 아우성과 항의가 빗발친다. 이날도 김씨는 기다리는 승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두르다 끝내 변을 당한 것.

철도고를 졸업하고 스무살에 철도청에 입사한 김씨는 격무속에서도 광운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졸업한 억척. 같은 철도공무원인 아내 김선미씨(29)와의 사이에 세살된 딸아이를 두고 있다.

성실한 ‘철도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던 김씨의 순직에 동료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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