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형 비만」 늘어난다…스낵-라면-소주소비 급증

  • 입력 1998년 9월 20일 21시 13분


서울 여의도 S증권사 최과장(35). 지난 주말 오랜만에 목욕탕에 들렀다. ‘그간 고생한 걸 생각하면 줄지 않았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올라선 저울. ‘아이쿠!’ 80㎏을 꼴깍 넘어섰다. 키 1m73인 그의 평소체중에서 3㎏이상 불어난 것. “거참, 늘어날 이유가 없는데….”

“IMF는 ‘I’m Fat’(나 뚱뚱해)?”

거품시대의 끝 무렵 대표적 화두(話頭)였던 ‘다이어트’는 빛을 잃었다. 팍팍해진 생활형편과 찐득거리는 피곤으로 경계심이 누그러진 사이 몸무게는 슬금슬금 늘어간다. 실직이 일상화되고 결식아동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상당수는 새로운 적을 만난다. ‘IMF형 비만’.

◇카우치 포테이토족

“윗사람 눈치보느라 자리에 있는 시간은 길어졌어요. 회식은 꼭 참석하지만 없는 날은 집으로 직행하죠. 비디오테이프를 한두개 빌리고 캔맥주와 과자 몇봉지를 사갖고 들어가요. 주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먹어대죠.”(D자동차 정과장·35)

“집에 있다보면 제일 큰 ‘운동’이 쇼핑입니다. 요즘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라 두번 나갈 걸 한번으로 줄였어요. 미리 목록을 만들어 필요한 것만 사서 바로 돌아오죠.”(최정희씨·36·주부·경기 성남시 분당구)

최근의 ‘IMF시대에 늘어난 것’ 조사(LG사외보 2백55명 조사). TV시청(29%)이 1위. 2위 독서(18%) 3위 흡연(10%) 4위 음주(9%) 5위 비디오시청(6%). 하나같이 운동량이 적은 활동. 특히 TV앞 소파에서 스낵과 맥주를 즐기는 ‘카우치 포테이토족(族)’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화여대 체육과 김설향박사. “최근 가처분소득의 감소와 이에따른 사회활동 위축으로 운동량이 전보다 10∼30% 줄고 있다. ‘비활동성 비만’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달라진 식탁

올 2·4분기 과자, 스낵류의 판매량은 11.0% 증가. 라면은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1% 증가. 6, 7월중 소주 출하량은 각 12.5%와 5.1%씩 늘어났다(통계청).

반면 쇠고기는 지난해보다 12.5%, 생선류는 9%, 우유는 21.1% 감소(LG슈퍼마켓·축협 조사). 또 우리나라의 특성상 주로 단백질, 지방을 섭취하게 되는 외식도 올 2·4분기에 28.0%가 줄면서 집에서 밥을 중심으로 한 탄수화물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판매가 늘어난 라면 소주 스낵의 공통점은 바로 탄수화물. ㈜풀무원 마케팅팀의 최미경씨(영양사)는 “이들 식품은 칼로리가 대단히 높고 빨리 먹을 수 있다. 주성분인 탄수화물과 알코올은 영양소가 적으면서 지방으로 축적되기는 쉬운 대표적 ‘엠프티 칼로리’”라고 설명.

◇스트레스와 다이어트의 중단

“아르바이트가 끊겨 시간은 많아요. 하지만 취업걱정 때문에 만사에 의욕이 없어요. 헬스클럽도 이젠 안다니죠. 괜히 허전해 군것질만 늘었어요. 다이어트에 신경을 겨를이 없어요.”(김모씨·22·S여대 사학과 3년)

‘나는 다이어트가 좋다’의 저자 김지수씨는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폭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분석대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상실감과 공허감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식욕을 통해 채우려 한다”고 설명. 서울시내 헬스클럽들은 지난해에 비해 30∼40%, 비만클리닉은 40∼50% 손님이 줄었다. 다이어트식품업체 관계자들은 올해 시장규모를 지난해의 3분의 2수준으로 예측한다.

백명기비만섭식장애클리닉원장(신경정신과박사). “‘다이어트’는 생존과 기본욕구가 충족된 다음에 생기는 2차적 욕구입니다. 생활에 쫓겨 다이어트를 포기하는 사람은 많아지고 라이프스타일과 식생활의 변화로 비만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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