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열린신문/특종]독자가 「다큐 조작」제보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53분


조작된 인공 다큐멘터리 KBS ‘일요스페셜―자연다큐멘터리 수달’. 우리 방송사에 기록될 만한 이 다큐멘터리 조작 사건은 독자들의 제보가 없었다면 영원한 감동의 ‘드라마’로 존재했을 것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던 이 사건을 푸는 열쇠는 바로 독자와 시청자들이 쥐고 있었다.

독자의 첫 제보가 동아일보 독자서비스센터에 접수된 것은 ‘일요스페셜’이 방영된지 17일만인 10일이었다. “이 다큐는 철조망을 치고 사육수달을 굶겨가며 촬영한 조작극이다. 며칠전 모방송에 제보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는 충격적 내용.

그러나 이때만 해도 제보자가 신원을 밝히지 않아 바로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기자는 12일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 가서 주민들과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를 시작했다. 이미 철거된 상태였지만 방동 1리의 계곡에서 철조망을 친 흔적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16일 본지 15면에 철조망을 사용한 인위적 연출에 대한 의혹이 보도되자 다시 독자서비스센터와 기자에게 제보가 이어졌다. 익명의 한독자는 “철조망설치보다 멀쩡히 사육되고 있는 수달을 야생수달처럼 찍은 것이 문제”라는 제보를 해왔다.

그러나 17일 14면과 18일 31면에 ‘수달 다큐는 조작극’이라는 후속 보도가 나가자 KBS측은 사육수달을 촬영하지 않았다는 해명자료를 언론사에 보내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 삐삐로 기자를 호출한 인제군의 한 주민은 자신의 신원을 밝히면서 “제작진은 주기적으로 수달 한쌍을 닭장 차에 싣고 와서 촬영했다. 이를 부인한다면 다른 목격자와 연결해 주겠다. 동아일보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제보했다.

또다른 주민들의 확인을 거쳐 연구진과 KBS측에 이 사실을 제시하자 수달전문가 한성용(韓盛鏞·경남대강사)박사가 마침내 “주인공 수달은 내가 연구용으로 위탁관리시켰던 것이었고 제작진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숨겼다”고 털어놓았다. KBS도 세차례의 사과방송과 대규모 중징계를 내림으로써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독자와 시청자의 날카로운 눈과 제보가 공영방송을 표방한 공룡방송 KBS의 오만을 무너뜨린 것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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