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수철, 팔만대장경 테마음악 완성

  • 입력 1998년 5월 18일 20시 06분


해인사, 깊은 산사의 팔만대장경. 그 경판 하나하나엔 장엄한 역사의 소리가 숨쉬고 있다.

이 땅을 침탈하려는 몽골군의 말발굽 소리, 끌려가던 고려 여인들의 호곡(號哭)소리, 국난 극복의 염원이 담긴 기도 소리, 그리고 지상의 모든 어둠을 감싸안고 우주에 울려 퍼지는 부처님의 자비와 평화의 원음(圓音)….

그 대장경 소리의 거룩함이 7백여년 세월을 견뎌내고 여기 이 땅에 찾아왔다.

대중음악계의 ‘작은 거인’ 김수철(41). 그가 팔만대장경을 상징하는 테마음악을 작곡했다. ‘팔만대장경 음악 1집.’

이 작업은 대장경 전산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고려대장경연구소(소장 종림스님)의 부탁으로 이뤄졌다. 작업 기간 2년반. 불교에 문외한이었던 그에게 이번 작업은 구도(求道)의 길이기도 했다.

지난 겨울, 해인사의 소리를 담기 위해 밤을 지새운 게 몇날 며칠인지 모른다. 살포시 부는 미풍에도 맑게 울리는 풍경 소리, 새벽 3시 세상의 아침을 깨우는 종소리, 비구니들의 은은한 기도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의 ‘소리 실험실’이자 ‘구도의 도량(道場)’이었던 서울 강남구 포이동 지하스튜디오. 인류에게 희망과 빛을 주는 팔만대장경의 소리를 찾기 위해 태평소, 아쟁, 오고북, 중국 악기 얼후 등 동서양의 갖가지 소리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 하루 열네시간, 자장면으로 식사를 때우는 고독한 작업이었다.

그 긴긴 대장정을 끝낸 14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 드디어 팔만대장경 음반 1집을 부처님께 바치는 고불식(告佛式)이 열렸다. 참석한 3백여 청중들은 장중하면서도 맑고 신비로운 우주의 소리를 들으며 깊은 명상에 잠겼다. “팔만대장경은 불교만의 유산도, 우리 민족만의 유산도 아닌 인류 전체의 유산입니다. 전쟁과 살육의 고난을 평화와 자비의 힘으로 극복하려 했던 팔만대장경의 정신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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