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살의 시인 배용제. 아직 죽음을 예정된 통과의례로 마중하기에는 젊은 나이. 그러나 데뷔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민음사)에서 그의 시선은 일상에 스며있는 죽음의 풍경을 집요하게 좇는다.
그에게는 「온갖 지상의 죽음들이란 너무도 평범하여서/텅 빈 몸들은 눈물만큼의 습기를 덮고 익으면 그뿐」(「묘지에서 묻다」중)이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호명할 때마다 영혼은/명령을 듣지 않는 누추한 육체의 집을 떠나리란 사실을/웅크린 채 익히고」(「공원의 노인들」중)있고 살아남아 망인의 주검을 지키는 사람도 「병풍 옆에서 상복의 사내가 졸고 있다」(「영안실」중)는 묘사처럼 구겨지고 피로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영원히 계속될 것같은 현재.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라도 유일하며 절대적인 「나」의 존재가 사소한 자동차사고같은 것으로 연기처럼 흩어질 수 있다는 진실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배용제는 뭇사람들이 애써 피해가려고 하는 그 「불길하고 아뜩한」 일들을 두려움없이 노래한다. 그것은 닳고닳은 데카당스를 흉내내는 몸짓이 아니라 생(生)의 숨은 뜻을 발견하려는 전복의 전략이다.
평론가 이광호는 배용제의 「죽음의 노래」의 가치를 이렇게 저울질한다.
『우리 시대에 저 음험하고 집요한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대결하는 시는 이렇게 죽음의 현대성이라는 주제와 만날 수밖에 없다. 죽음의 현대성만이 자본의 신화가 건설한 세계의 뒷면을 미리 엿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로 등단한 배용제. 오랜 습작기간에 착실히 저축해온 시 예순여섯편으로 보기드물게 부피있는 첫 시집을 시단에 내보였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