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이후 외계인 소재 영화 『인기』

  • 입력 1997년 11월 19일 07시 34분


1982년, 미래에 대한 공상을 그린 두 편의 영화가 나왔다. 「ET」와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 외계인과의 만남을 아름다운 동화처럼 그린 「ET」는 크게 인기를 끌었지만 미래에 대한 암울한 묵시록 같은 「블레이드 러너」는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영화들에서 외계인은 대체로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 외계인들은 거대한 파충류나 바퀴벌레 같은 모습으로 지구를 공격했다. 할리우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흉측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첨단 특수효과를 총동원했다. 미국 액션 영화들은 「악」의 상징이던 공산주의가 맥을 못추게 된 90년대 들어 외계 생물체의 잔인함과 침략성을 강조해왔다. 영화제작자들은 「피스메이커」나 「에어 포스 원」에서처럼 러시아 중동 보스니아의 테러리스트를 「평화의 적」으로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던 것일까. 보다 지능적이고 강한 「악」은 우주로부터 끌어오는 인상이다. 29일 개봉될 「스타십 트루퍼스」는 잔혹한 외계 생물을 동원한 결정판처럼 보인다. 폴 버호벤 감독은 외계인을 과학적 상상력의 산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 사회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한다. 감독은 영화속 인물의 입을 빌려 『폭력이 힘이다. 역사상 모든 권력은 폭력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철학을 짜릿한 오락거리로 소화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스타십 트루퍼스」에는 「원초적 본능」이나 「토탈 리콜」 등에서 보여준 자극적 에로와 선명한 폭력이 유감없이 나타난다. 외계 곤충의 발에 몸을 관통당한 인간이 피를 철철 흘리는 장면이나 외계인이 인간의 머리에 촉수를 넣어 골수를 빨아먹는 것은 「부드러운」 장면에 속한다. 반면 이미 상영중인 「콘택트」는 우주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 드문 영화다. 외계인 역시 여기서는 괴물이 아니라 친절한 이웃이며 선진 문명자로 묘사된다. 그러나 「외계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생물체 존재 여부를 탐사하는 글을 쓸 만큼 탁월한 상상력을 지녔던 원작자 칼 세이건도 정작 외계인의 모습에 대해서는 벽에 부닥친 듯하다. 때로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애인의 모습으로 상대에 따라 다른 형상을 드러낸다. 외계인은 「우리 마음의 반영」이라는 작가의 철학 때문일까.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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