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왕은 없다」,「敗者」가 본 권력의 허무 그려내

  • 입력 1997년 11월 13일 09시 08분


<성낙주 지음/들녘 펴냄> 권력의 향기, 그것은 곧 죽음의 향기다. 그 맛에 취하면 살아서는 그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은은히 풍겨나오는 사향(麝香)처럼, 처음엔 살짝 코끝을 간질이지만 점점 살을 뚫고 뼛속까지 파고든다. 뇌수를 자극하고 온몸을 전율케 하다가 마침내, 이성을 마비시키고야 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용의 눈물」이 그렇고, 눈앞에 펼쳐지는 작금의 정치판이 그렇다. 재작년 종교소설 「차크라바르틴」을 발표해 문단을 흔들었던 성낙주씨(43). 그의 역사소설 「왕은 없다」(들녘)는 이같은 권력의 속성, 「용의 역린(逆鱗)」이 뒤척일 때마다 피비린내를 풍기는 권력의 「흉곽 부위」를 열어보인다. 조선 건국초, 권력의 최대 피해자였으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던 양녕대군의 내면세계를 따라 흐르면서, 세종조 문예부흥의 이면과 그 시대의 지향점을 아울러 짚었다. 『역사소설을 폄훼하고 천시하는 풍토가 안타깝습니다. 소설가들이 공력(功力)을 들이지 않고, 그저 관성대로, 야담이나 야록을 써내려가듯 한데 책임이 있겠지만요』 만약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가 있었다면 우리 문학의 보고가 이렇듯 잡초더미에 내버려져 있겠느냐고 한탄한다. 『우리 선조들은 결코 허술하게 살지 않았어요. 그들이 책 한권에 쏟은 정성을 생각해 보세요. 선비들이 글자 한자 한자, 한획 한획에 기울인 심력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말 모자라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왕은 없다」는 역사소설의 일상적 범주를 뛰어넘는다. 조선 건국초 70여년의 역사를 용해시켜 한 인간(양녕)의 의식과 삶 속에 들이붓는다. 섣불리 한 시대의 역사를 재단하기보다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인물을 평가하기보다는, 시대 자체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뜨거운 시선이 느껴진다. 권력에 관한 한 처절한 패배자였던 양녕. 세자 시절 일찍이 권력, 그 허무의 끝을 보아버린 그. 양녕은 세자 시절 우연히 대조전의 임금 처소를 엿보게 된다. 궁녀를 닦달해 문이 열린 임금의 처소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백색의 공간이었다. 그 방은 문짝부터 사방 바람벽이 온통 무색무취한 하얀 종이로 도배돼 있었다. 그 흔한 문갑 하나, 기물 하나, 병풍 하나 보이지 않는 순연한 무(無)의 공간. 혹여 자객이 은신하거나 폭약을 숨겨놓을 것에 대비해 그리 한 것일까. 양녕은 신음한다. 『이, 이런 곳인가. 이렇게 삭막한 데서…』 양녕은 순간, 무덤 속에 홀로 내던져진듯 부르르 떤다. 그런 양녕이지만 권력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끝내 떨치지 못한, 권력에 대한 회한은 아우 세종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세종이 누군가. 그는 반문한다. 해동의 요순. 한글을 창제하고 문치의 태평성대를 연 성군. 살아 생전, 죽어서만 받을 수 있었던 왕의 호칭을 받은 절대 권력자. 그러나 그도 재위 32년 내내, 무거운 업(業)의 그림자에 짓눌리지 않았던가. 양녕은 내뱉는다. 『형들을 밟고 올라간 것도 부족해 처가 일족까지 회쳐 먹은 사람. 명색은 왕이라지만 결국은 관비의 사위요, 파락호와 중놈의 동생 아닌가!』 「인물과 사상②」에서 문화전사 유홍준에 예리한 칼날을 겨누었던 작가 성씨. 그의 인문학적 식견과 안목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세종조 말기, 「꽃이 흐드러지면 그것을 시샘하는 찬서리」의 불온(不穩)한 기운을 읽는다. 「몽유도원도는 그 눈부신 화려함과 퇴폐에 가까운 아름다움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비애의 덩어리였다. …세종 아우의 치세도 벌써 난숙함을 넘어 시샘의 시절로 접어드는가」. 때때로 소설적 상상력은 역사의 공백, 「사초(史草)」가 자라지 않는 황량한 땅에 한줄기 시원한 소나기를 뿌리기도 한다.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었는가. 애민(愛民)? 자주? 이도 저도 아니면 통치의 필요? 사실은, 조선을 영원히 자신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야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언문이 있는 한, 조선의 백성은 모두가 자신의 백성일 수밖에 없다는, 그 엄청난 야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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