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막힌 세상. 누군들 미치고 싶지 않으랴.
세계연극제에 특별초청되어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난 리어왕(유인촌 분)은 『너희들은 미쳤어』하며 무대를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희고 검은 다양한 피부빛의 배우들도 객석에 손가락질하며 『너희들은 다 미쳤어』하고 소리를 질렀다.
관객들은 웃었다. 그러나 처연했다. 미칠 것같은 현실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일까.
국제극예술가협회(ITI) 세계본부회장인 김정옥씨는 해체와 충돌의 미학을 추구하는 연출자다. 우스갯소리로 「비빔밥 연출가」로 불리는 그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고귀한 위치에 있어 결코 미칠 수 없으나 미쳐버리고 마는 자」와 「천한 위치에 있으면서 미친놈같이 굴지만 제 정신을 가진 자」들로 해체했다.
전자에 놓인 인물군이 리어왕과 딸들, 그로스터백작과 두 아들이라면 후자에 놓인 인물은 어릿광대들이다.
우리 민속연희의 연극적 요소를 기막히게 활용해온 연출자는 이 작품에서 광대의 역할을 극대화했다.
해설자요, 사물을 꿰뚫는 현자의 역할을 하는 그들은 리어왕이 놓인 사회적 질서에 대항해 웃음으로 야유하고 꾸짖고 매질한다. 리어왕 곁에서 영혼의 눈을 뜨도록 돕는다.
그리고 죽은자들까지도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는다. 그래서 우리시대 관객들마저 어디 그런 광대 없소, 하고 한숨쉬게 만든다.
이 작품이 던진 또하나의 화두는 말(言)이다.
리어왕의 셋째딸 커딜리어(방은진분)는 아비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 쫓겨났다. 미사여구로 사랑을 표현한 두 딸의 말은 거짓으로 밝혀진다. 7개국 배우들이 쏟아놓는 7개국 언어는 관객에게 기와 에너지 그리고 공기의 떨림을 통해 가감없이 전해진다. 그렇다면 말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15일까지 공연. 02―3444―0651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