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대학 세계여행②]일본

  • 입력 1997년 7월 22일 08시 09분


문형진씨(오른쪽)
문형진씨(오른쪽)
일본 가는 바닷길. 태풍이 우리 배의 항로를 가로막았다. 배가 몹시 흔들렸다. 교수님은 배의 바닥에 고정되어 있는 교탁을 붙잡고 서서 강의를 했다. 어떤날 밤에는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복도 곳곳에는 토할 것에 대비한 「멀미용 봉투」가 비치되어 있었다. 드디어 오사카에 도착했다. 열하루만에 육지에 발을 내디디니 왠지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미국영사관부터 찾았다. 새로 만든 여권에 미국비자가 없었기 때문. 전화를 받는 일본인여직원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었다. 세번째 전화를 한 끝에 겨우 영사관근처의 지하철역 이름을 알아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일본사람들은 너무나도 친절했다. 출구를 못찾아 쩔쩔매는 나와 미국 여자친구 레이시를 입구까지 데려다 주던 할머니, 책 읽던 것을 멈추고 우리가 내려야 할 역을 가르쳐 주던 샐러리맨,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여대생 게이코 등. 그러나 막상 영사관에 도착했을때는 또 불친절한 일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인 경비원이 거만하게 폼을 잡으며 막무가내로 우리를 건물안으로 못들어가게 막았던 것.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랬을까. 그때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레이시가 발끈해서 나섰다. 『아니 미국시민이 미국영사관에 들어가려는데 뭐가 문제죠』 일본어를 모르는 레이시였지만 그녀의 당찬 태도에 경비원은 눈에 띄게 기세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기죽은 목소리로 내게 뭔가를 물어왔다. 대충 짐작하건대 『이 당찬 미국여자가 당신 와이프요』 하는 것 같았다. 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하이(예)』하고 대답해 버렸다. 그랬더니 신통하게도 그 경비원은 우리를 공손한 태도로 안으로 들어가게 해줬다. 저녁엔 낮에 길을 안내해 줬던 게이코와 룸메이트 케일립, 미국친구 레이시와 식사를 같이 했다. 비자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내가 한턱을 낸 것. 게이코는 나와 조금 친해지자 자꾸 손으로 내 무릎을 만졌다. 난 어쩔줄 몰랐다. 친구 케일립과 레이시를 보기도 무안했다. 식사를 마치고 배로 돌아올때 레이시가 조금 화난 목소리로 『동양인들은 그렇게 만지는 것이 괜찮은 일이야』라고 물었다. 그 사건(?)은 결국 후일 내가 레이시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딱지를 맞는 큰 이유가 됐다.지하철 신칸센을 타고 도쿄에 갔다. 공중전화 부스마다 콜걸 사진과 전화번호가 적힌 딱지광고가 가득 붙어있어 놀랐다. 어느 백화점 지하에선 미국의 한 흑인가수가 사인회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10대소녀들이 긴 줄로 서 있었다. 그 흑인 가수는 미국에선 이름도 별로 없는 가수였다. 길거리에선 여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혹시 저 사진도 공중전화 부스에 붙여질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머리 속이 한동안 어지러웠다. 일본으로 가는 배에서의 일. 유람선대학의 학생회관은 밤에는 맥주만 파는 바(Bar)로 변한다. 그곳에서는 음악회나 쇼도 종종 열린다. 어느날 장기자랑 쇼를 구경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술이 취한 에리카라는 아이가 갑자기 뒤에서 나를 와락 껴안았다. 난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쩔줄 모르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한동안 얼어 붙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때 문득 나와 친하게 지냈던 머렐(74)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배에는시니어패신저(Senior Passenger)라고 불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스무분 정도가 같이 여행을 하는데 수업도 같이 듣는다. 머렐할머니는 그들중 한분. 『잔(영어식 나의 이름), 혹시 프로텍션(Protection·콘돔)이 필요하면 아무때라도 나한테 오라고. 요즘엔 꼭 하고 해야 돼』물론 그것이 필요할 일은 절대 없었지만 나에게는 황당하고도 놀라운 제의였다. <문형진씨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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