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동본 결혼허용]3쌍의 감회『사랑은 법보다 강하다』

  • 입력 1997년 7월 17일 20시 48분


헌법재판소가 「동성동본 혼인금지」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림에 따라 최고 20만쌍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성동본 부부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변호사 金鍾律(김종률·35·서울 강남구 일원동)씨는 8년전의 가슴앓이가 새삼스레 밀려들어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 김변호사가 부인 金지완(33)씨를 처음 만난 것은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지난 88년7월. 동성동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부인에 대한 사랑과 「동성동본 불혼」조항의 비합리성에 대한 확신으로 끈질긴 설득 끝에 양가 부모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때마침 국회에 이 조항의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이 상정돼 결혼준비는 순탄하게 진행됐으나 기대와 달리 그해 말 국회에서 동성동본 혼인금지 조항이 개정되지 않았다. 낭패감에 빠진 김변호사 부부는 양가 부모를 다시 설득해 온 가족의 축복속에 그 다음해 결혼식을 올렸으나 마음 한구석이 항상 무거운 세월을 지내왔다. 김변호사는 『불합리한 법조항 때문에 고생했던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며 이와 유사한 문제로 차별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소임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새로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이모씨(58·서울 성북구 종암동)는 이번 헌재 판결로 부인 이모씨(57)의 본관을 되돌려 줄 수 있는 게 무엇보다도 기쁘다. 지난 62년 직장에서 부인을 만난 뒤 양가 부모에게 6개월간 집요하게 호소한 끝에 결혼에 성공했으나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던 이씨는 부인 이씨의 호적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를 대고 간신히 혼인신고를 마칠 수 있었다. 이씨는 『언젠가는 (동성동본 불혼조항이) 바뀌리라 믿었지만 너무 늦게 바뀌었다』며 『더이상 불합리한 법과 관행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며 밝게 웃었다. 대학 3학년 때인 지난 92년 설악산에서 처음 만나 결혼을 약속한 朴世鎬(박세호·27·회사원·서울 서대문구 역촌동)씨와 朴賢珠(박현주·25·회사원·경기 고양시 일산구)씨에게는 헌재의 판결이 「백만의 원군」이다. 『주위의 친척에게 어떻게 청첩장을 돌리겠느냐』고 결사 반대하는 부모들을 설득하다 지친 두 박씨는 『이번 결정은 사랑이 법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정의의 외침』이라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철용·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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