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애호박에 말뚝박기, 비단옷 가게에 물총쏘기, 옹기짐 받쳐놓은 지게 작대기 걷어차기, 똥누는 아이 주저앉히기….
놀부의 심술은 끝이 없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홀쭉한 허벅지를 베개삼아 듣던 흥부와 놀부형제의 인생유전은 손에 땀이 밸만큼 재미있었다.
구수한 입담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꿈나라를 헤맸던 기억들…. 그래서일까, 착한 아우 흥부를 응원하지만 때로는 욕심꾸러기 놀부에게서 선한 구석을 찾아내려 마음을 쓰기도 한다.
선조들의 한과 해학, 풍자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판소리 열두마당. 여기에는 정겨운 스토리와 건전한 메시지가 가득하다.
앞못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일념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효심.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려 애쓰는 거북의 충성….
「당신들의 천국」 등 묵직한 어른소설을 써온 작가 이청준이 전통의 옛 이야기를 현대 감각의 문체로 풀어 「재미있는 판소리 동화」 시리즈(파랑새·각권 5,000원)를 냈다.
우선 제목에서 동심을 아우르는 재치가 엿보인다.「놀부는 선생이 많다」(흥부가) 「토끼야, 용궁에 벼슬가자」(수궁가)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심청가). 춘향가와 옹고집타령도 머지 않아 나올 예정이다.
줄거리야 원래 익히 아는 것. 하지만 어깨에서 힘을 뺀 가벼운 필치로 사설조 타령을 감칠맛나게 엮어 지루하지 않다. 우리정서 특유의 가락이 살아 있어 주요 대목마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앉아서도 눈을 뜨고/서서도 눈을 뜨고/대궐 문을 나서다가도 뜨고/길을 가뉨立도 뜨고/…」. 심봉사가 마침내 눈을 뜨는 순간의 긴장과 설렘을 함축한 노래말.
「나는 간다/내가 돌아간다/흰 구름 푸른 산/그리운 고향 산천으로/내가 돌아간다」.
바다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토끼는 뭍에 도착한 소회를 의기양양하게 표현한다.
여백과 생략을 과감하게 채용한 삽화도 익살스럽게 다가온다.
『판소리는 어떤 형식의 문학장르에 못지않은 재미와 상상력, 삶에 대한 꿈과 믿음과 지혜를 담고 있다』 백발이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작가」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동화의 고전」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박원재 기자〉
▼ 전문가 의견 ▼
아람유치원(서울방배동)박문희원장은 『흥부 심청 등 등장인물의 속내를 진솔하게 그린 덕택에 이들이 「현실속 인물」로 살아난다』며 『갈수록 영악해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스스로 가치관을 가다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동화일러스트레이터 남은미씨도 『판소리의 원형인 설화의 모습에 충실하면서 구수한 재담으로 엮은 점이 인상적』이라며 『효도와 충성,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인 주제를 거부감없이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씨는 『스피디한 선으로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에는 유머가 넘쳐 흐르며 캐릭터의 얼굴 표정도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어린이도서연구회 권기숙씨는 『작가가 한자말과 고사성어를 쉽게 풀어쓰려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판소리 운율이 갖는 특징을 글을 통해 느끼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