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무말랭이를 만들며

  • 입력 1996년 11월 20일 20시 40분


가을의 정취를 느껴볼 겨를도 없이 김장철이 다가와 주부들의 손길을 바쁘게 한다. 이맘때면 나는 무말랭이 만들기에 바쁘다. 무말랭이를 만들때면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의 주특기 밑반찬은 무말랭이 무침이었다. 이맘때면 무 가지 호박 고추 등을 사다가 썰고 다듬어 채반에 담아 햇볕이 잘드는 뜰에 널어 말리곤 하셨다. 그것들은 밑반찬이 돼 겨울뿐 아니라 봄 여름까지도 반찬걱정을 덜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도라지도 말려서 무말랭이처럼 무치시고 양파며 토마토도 장아찌로 만들어 밑반찬을 하셨다. 그것들을 모두 상에 올려놓으면 12가지도 더 되지만 그중 제일 인기좋은 것이 무말랭이 무침이다. 그 맛은 어느 집에 가도 맛볼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말랭이를 많이 만들어 분가해 사는 여섯 아들 집에 나누어 주는 것이 큰 즐거움이셨다. 동서들도 밑반찬이 떨어지면 전화를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말랭이며 도라지 등을 손수 무쳐 갖다 주시는데 그 발걸음은 매우 가볍고 표정도 마냥 즐거워 보였다. 남편도 무말랭이를 제일 잘 먹기에 나 또한 그 맛을 전수받았다. 해마다 김장무가 싼 계절이 오면 무말랭이를 만들어 두고 조금씩 무쳐먹으면 도시락찬에도 좋고 입맛 당기는 훌륭한 반찬이 된다. 김장김치가 떨어지는 봄철에도 인기있는 반찬이다. 시장에 나가보면 속성으로 열에서 말린 무말랭이가 많지만 정성을 들여 햇볕에 말린 것과는 비교도 안된다. 밑반찬을 안먹는 신세대인 아이들도 이 무말랭이만은 잘먹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도 우리집 무말랭이를 먹어보면 맛있다고 그 비법을 묻곤 한다. 무말랭이에 고춧잎 말린 것도 함께 섞으면 그 또한 일품이다. 낙엽이 뒹구는 스산한 날씨에 옥상에서 무를 썰어 말리면서 시어머니의 모습이 어른거려 가슴이 찡하다. 이 초 심(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90의 1627)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