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랠길 없는 『명퇴 설움』소재 연극 「중년의 남자…」

  • 입력 1996년 10월 28일 20시 22분


「金順德 기자」 『나는 「짤렸다」』 어둑어둑한 저녁, 한 중년남자가 아무도 없는 아파트 거실바닥에 앉아 소주병을 기울이며 중얼거린다. 요즘 기업마다 몰아치고 있는 명예퇴직 한파에 밀려난 것이다. 40, 50대 직장인들의 명예퇴직을 소재로 한 연극 「중년의 남자에게는 미래가 없다」(김행호 작 황남진 연출)가 공연된다. 오는 11월7일 서울 충정로 문화홀에서 개막되는 이 작품은 중견배우 조명남씨(55)의 모노드라마로 직장남성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대기업 중역으로 있는 친구들이 술만 마시면 「네가 부럽다」고 합니다. 매인 직장이 없으니 명예퇴직도 없기 때문이라나요』 배우 조명남씨는 『이제야 일맛을 알 것 같은 나이에 일터에서 밀려나고 집에서도 돈 못번다고 냉대받는 설움은 말로 다 못한다더라』며 이들의 입장을 실감나게 전하겠다고 말한다. 그가 그리는 50대초반의 주인공 「심오한」은 방송작가다. 프리랜서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명예퇴직은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신세대 감각을 쫓아가지 못하는 그는 방송국에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사실상 「짤린 상태」에 있다. 그에게 다시 일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던 방송국 강부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명예퇴직 당했다는 것이다. 할줄 아는 일은 글쓰는 것과 방송뿐이었던 두 사람은 말그대로 무능력자다. 성적 능력도 예전같지 않아 아내는 침묵으로 무언의 시위를 한다. 어디에도 울분을 터뜨릴 길 없는 주인공은 소주 한잔에 혼자말을 하는 수밖에 없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자기를 위해 한 일은 없는거야. 하루 세끼 밥먹는 일 밖에는…. 회사를 위해서, 마누라를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살아왔어』 아무리 술을 마셔도 이 사회에서 퇴장 당하는 억울함은 달래지지 않아 버럭 소리를 지른다. 『내가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너같은 놈은 까까머리였어. 너희들이 나가라면 나가줘. 퇴직금에 이년치 월급 더 주는거 일없어. 내가 원하는건 이 회사에 투자한 젊음, 그거야』 이 연극은 명예퇴직에 대한 어떤 대안도, 중년남자를 위한 어떤 위로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작품을 기획한 김유경씨(열린판 대표)도 『실제 명예퇴직한 사람들은 공연장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들의 가족, 그리고 명예퇴직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직장인이 주관객층이 되리라는 예상이다. 『회사나 사회가 달래주지 않는 이들의 상처를 연극이 위무해주기를 기대한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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